=도보 여행=

강원도 여행 2박3일 2일차=낙산사

노송☆ 2024. 9. 18. 08:02

@ 아침에 일찍 일어나 대관령 휴양림을 산책 해본다. 

▼ 대관령 휴양림 휴양관 숙소

▼ 주차장과 숙소를 연결해 주는 다리

▼ 연립동 안내도

▼ 숲속의 집 모습

▼ 대관령휴양림 산책 안내도

▼ 휴양림을 가로 지르는 계곡

▼ 매표소 부근에 있는 안내도

▼ 매표소

▼ 우리는 가래나무 와 자작나무에서 휴식을  취했다.

@ 아침식사를 숙소에서 마치고 양양 낙산로 향했다.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오봉산(五峯山)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사찰.

관세음보살이 머무른다는 낙산(오봉산)에 있는 사찰로, 671(신라 문무왕 11) 의상(義湘)이 창건하였다.  6·25전쟁으로 소실되었다. 전쟁으로 소실된 건물들은 1953년에 다시 지었다. 3대 관음기도도량 가운데 하나이며, 관동팔경(關東八景)의 하나로 유명하다. 경내에는 조선 세조(世祖) 때 다시 세운 7층석탑을 비롯하여 원통보전(圓通寶殿)과 그것을 에워싸고 있는 담장 및 홍예문(虹霓門) 등이 남아 있다. 그러나 200546일에 일어난 큰 산불로 대부분의 전각은 소실되었다.

원통보전 내부에는 관세음보살상이 안치되어 있다.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량을 복구한 후 이곳으로부터 약 8km 떨어진 설악산 관모봉 영혈사(靈穴寺)에서 옮겨 왔다고 한다. 제작 시기는 12세기 초로 추측되는데, 고려시대 문화의 극성기 양식을 나타낸 매우 아름다운 관음상이다.

▼ 낙산사 일주문

▼ 낙산사로 가는 데크길

▼ 낙산사 안내문과 안내도

▼ 아치형의 홍로문

▼ 아치형문을 들어서면 잘 가꾸워진 소나무들이 도열하듯 반겨주는데 유명인의 기념식수가 많다. 

▼ 사천왕문의 사천왕

▼범종루

▼ 보일루 

▼ 보일루 2층내부, 무료 음료도 제공되어 않자서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 낙산의 본전인 원통보전

▼ 국가 유산인 칠층석탑

▼원통보전에서 관음보살이 세워진 광장으로 가는길, 20년전 산불로 인해 불타버린 소나무들이 새롭게 잘 자라고 있다. 

▼ 동해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관음 보살

@, 이 절의 창건과 관련하여 전하는 이야기가 있다. 의상이 관음보살을 만나기 위하여 낙산사 동쪽 벼랑에서 27일 동안 기도를 올렸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여 바다에 투신하려 하였다. 이때 바닷가 굴 속에서 희미하게 관음보살이 나타나 여의주와 수정염주(水晶念珠)를 건네주면서, "나의 전신(前身)은 볼 수 없으나 산 위로 수백 걸음 올라가면 두 그루의 대나무가 있을 터이니 그곳으로 가보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는데 그곳이 바로 원통보전의 자리라고 한다. 부속건물로 의상대(義湘臺), 홍련암(紅蓮庵) 등이 있고 이 일대가 사적 제495호로 지정되어 있다. 200545일 강원도 삼척, 강릉, 고성을 휩쓴 큰 산불이 일어나 낙산사 원통보전과 여러채의 전각이 소실되고 보물 제479호로 지정된 낙산사 동종이 화마에 녹아버렸다.

▼ 보타전

 

▼ 불교 기념품을 팔고 있는 기념품 상점내부 전시물

▼ 의상대 

▼ 홍련암 가는 길에서 본 의상대

▼ 홍련암

▼ 홍련암 관음 보살

@ 낙산사 관람을 마치고 경포대로 향했다. 

경포대(鏡浦臺)는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에서 동북쪽으로 7km 지점, 언덕 위의 누대(樓臺), 정면 5, 측면 5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관동팔경의 하나이다.

19711216일 강원특별자치도의 유형문화재 제6호로 지정되었으며, 20191230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2046호로 지정되었다.[1]

관동팔경의 하나로 경포호수 북쪽 언덕에 있는 누각이다. 고려 충숙왕 13(1326)에 건립되었으며, 그 뒤에도 여러 차례에 걸쳐 수리를 하였다고 한다. 태조(재위 13921398)와 세조(재위 14551468)는 친히 이 경포대에 올라 사방의 경치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경포대는 일반 누정과 달리 내부 공간의 특성에 따라 의미를 부여한 마루를 기능에 따라 3단으로 구성하였으며, 누마루를 2단으로 구성한 것은 유례가 없으며, 특히 가장 높은 누마루의 형태가 머름대 형식을 취했고 아래의 누마루는 계자난간을 가설한 형식 또한 유례가 없는 독특한 구성이다.[1]

▼ 경포대 안내실

 

 

▼ 경포대는 보수공사 중이라 내부를 살펴 볼 수 가 없다.

 

경포대는 일반 누정과 달리 내부 공간의 특성에 따라 의미를 부여한 마루를 기능에 따라 3단으로 구성하였으며, 누마루를 2단으로 구성한 것은 유례가 없으며, 특히 가장 높은 누마루의 형태가 머름대 형식을 취했고 아래의 누마루는 계자난간을 가설한 형식 또한 유례가 없는 독특한 구성이다.[1]

머름대: 창문 아래 높은 문지방인 머름 밑에 가로 지른 나무

계자난간: 위로 올라갈수록 밖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난간으로 계자다리(鷄子多里)가 난간대를 받치고 있음. 이와 같이 시대적 상황을 공간과 해당 부재가 흔적으로 지니고 있는 경포대는 조선시대의 것뿐만 아니라 근현대사의 과정을 모두 담고 있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조선후기의 정자로서 역사적, 예술적, 학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므로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할 가치가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