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기행

원주 치악산 구룡사

노송☆ 2021. 6. 8. 13:12

@, 2021년 5월 30일 31일

@, 반계리 은행나무, 용수골 양귀미 축제장, 그리고 치악산 구룡사 황장목길을 세렴 폭포까지 걷고 내려 오면서 구룡사를 관람한다.

@ 구룡사는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하욨다고 하며 원래 대웅전 자리는 아홉마리 용이 사는 연못이 있었다고 합니다. 의상은 이 곳이 마으에 들어 용들과 도술시합을 하여 사는 용들을 물리치고 절을 지었는데 아홉마리 용이 살던 곳이라하여구룡사(九龍寺)로 불리게되었습니다. 조선 시대에 들어 사찰이 되락하게 되었는데 어느 날 한 노인이 찾아와 절 입구 거북바위 때문에 절의 기가 약해진 것이라 하여 바위를 깨버렸으나 이후 절은 더욱 쇠약헤져 갔습니다. 이때 한 도승이 나타나 절이 쇠약헤진것은 거북바위를  깨서 혈맥이 끊겼기 때문이라 하였으며 그때부터 거북바위를 살리는 뜻에서 절 이름을 지금의 구룡사(龜龍寺)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삼층석탑

@,사천왕문은 사찰의 삼문 가운데 두번째 문으로 네방위를 수호하는 지국천, 증장천, 광목천, 다문천을 봉안한다.

비파를 들고 있는 서방 광목천 과 칼을 들고 있는 동방 지국천
용과 여의주를 가지고 있는 남방 증장천, 탑을 들고 있는 북방 다문천

@, 구룡사는 치악산 능선 밑에 위치하고 있으며 조선 중기 이후 산지에 건립된 사찰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구룡사는 사천왕문을 통과하여 보광루을 지나 대울전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는데, 이는 경사진 지형의 사찰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양식이다. 보광루는 구룡사의 사찰 배치에서 본당에 들어가는 마지막 문인 불이문(不二門)의 성격를 가진 건물로 공간의 위ㅣ계를 구분함과 동시에 누각 아래를 통한 진입으로 공간을 바꾸는 역활을 한다. 구룡사는 신라 문무왕 때인 668년에 의상대사가 세웠다고 전해지며 창건에 얽힌 설화가 전한다.  2008년 보광루 해체 보수공사 때에 발견된 상량문에 따르면 숙종 33년(1707년)에 다시 지은 것으로 보인다. 안석경(1718-1774)의"삽교집"에는 지금은 볼 수 없는 대승암, 백련당, 월봉암 등 선승들이 살았던 암자 등 구룡사 주변 풍경이 잘 묘사 되었다.  [구룡사 보광루는 강원도 유형문화제 제145호] 

광루에서 본 사천왕문
대웅전

@ 사찰에 따라서 중심 법당의 이름이 서로 다른 것은 불교 발전과 더불어 발생한 여러 종파가 그들이 의거하는 경전과 교리 드에 따라 예배 대상인 주존불을 달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웅전 과 대웅보전" 이라는 현판을 단 전각은 석가모니불을 모시는 전각이다. 이반적으ㅡ로 대웅전은 사찰 경내의 가장 중심에 위치하며 본존불인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보살 과 보현보살을 봉안한다. 대웅보전은 주존불오 석가모니불을 좌우에 아미타불과 약사여래를 모시며 각 여래상의 좌우레 제각기 협시보살을 봉안하기도 한다.

대웅전에 봉안 된 삼존불, 좌측으로 부터 아미타불, 석가모니불,약사불이 모셔져있다. 하지만 현판은 대웅전으로 달았네요
관음전

 

지장전
사천왕문 지붕모습

 

구룡사 보호수 은행나무, 수려은 약 200년 나무둘레 350cm

@ 은행나무는 1억 5천만년 전 공룡이 살던 시대부터 있었던 나무이기에 화석(化石)나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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