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보 여행=

충주 탄금대와 중앙공원

노송☆ 2019. 6. 4. 14:10

@ 2019년 5월 20일  월요일


@, 탄금대는 충주시 근처에 있는 대문산(108m)의 정상을 지칭한다. 산 아래로 남한강이 흐르는데 강변에

    기암절벽이 형성되어 있고 울창한 숲으로 덮여 있어 경치가 매우 아름답다. 절벽을 따라 강물이 휘감아도는

    탄금대는 남한강과 너른 들이 한눈에 보이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강줄기의 모습은 강물이 내려다보이는

    벼랑에 위치한 열두대에서 가장 잘 보인다. 정상부에는 사방을 조망할 수 있는 탄금정이 있고, 동쪽으로는

   계명산과 남산이 솟아 있으며 아래로는 충주 시가지와 넓은 평야지대가 펼쳐져 있다.

▽ 탄금대 조감도

@  탄금대의 유래 (명승42호)

    신라 진흥왕 때인 552년 악성(樂聖)으로 불린 우륵(于勒)은 가야국의 멸망을 예견하고 신라에 귀화했다.

    진흥왕은 우륵을 반기며 국원(충주)에 거주하게 했다. 그리고 신라의 청년인 법지, 계곡, 만덕을 선발해

   악(樂)을 배우게 하고 우륵을 보좌하도록 했다. 이런 연유로 우륵은 만년에 멸망한 가야국을 떠나 충주에

   우거했다.
   남한강과 달천이 합류하는 지점에 자리한 나지막한 산은 풍광이 매우 아름답다. 우륵은 이곳의 풍치를

   탐미하여 산 정상에 있는 너럭바위에 앉아 가야금을 탔다. 이곳이 바로 우륵이 금(琴)을 탄 곳이라고 해서

   붙여진 ‘탄금대(彈琴臺)’다. 우륵이 연주하는 가야금의 미묘한 소리는 사람들을 불러모으기 시작했고 곧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탄금대 주변에는 지금도 가야금과 관련된 지명이 남아 있다. 칠곡리(칠금동),

   금뇌리(금능리), 청금리(청금정) 등의 마을 명칭은 모두 가야금과 관련된 것이다.






@ 충혼탑

   서기 1955년 11월에 대한닌국 상이군경 용사회 충청북도 충주분회와 대한민국 제대장병 보도회

  (현 재향군인회)에서 광복이후 전사한 충주, 중원 지역의 장병과 군무원 군노무자 2838위 넋을 추모하고자

    충혼탑을 세웠다.



@, 탄금대는 임진왜란의 참혹한 역사를 보여주는 의미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당시 도순변사였던 신립(申砬)은

    8,000여 명의 군사와 함께 왜장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와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이끄는 왜군에 맞서

   탄금대에서 격전을 치렀다. 그는 배수진을 치고 물밀듯이 밀려오는 왜군에 대항해 싸웠으나 전세가 불리하여

   결국 패하고 말았다. 신립은 이곳 탄금대에서 남한강에 투신하여 장렬하게 최후를 마쳤다.

   이 분들의 기리기 위한 팔천고혼 위령탑을 세웠다.




▽ 탄금정


▽  열두대

@, 열두대

    탄금대 북쪽 절벽에는 열두대가 위치하고 있다. 열두대의 지명에 관한 유래는 확실하지 않다. 바위의 층계가

    12개이기 때문에 열두대라 하기도 하고, 절벽 아래 물이 12번 돌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또한 임진왜란

    당시 교전 중 달구어진 화살을 식히느라 12번을 오르내렸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열두대 아래는

    깊은 소가 있는데 이를 양진명소라 한다. 이곳에 뱃길을 관장하는 수신(水神)이 살고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나 선주, 선박 상인들은 양진명소에서 안전과 번영을 빌었다고 한다.










@ 탄금대 탐방을 마치고 중앙공원으로 고고 ~~~~

@, 중앙공원

중앙공원은 면적은 약 7,500이다. 조선시대 충주읍성 내에 있던 충주목(忠州牧) 관아터에 조성한 공원으로, 청녕헌(淸寧軒)과 제금당(製錦堂) 등 옛 관아건물이 남아 있다. 이 관아건물들은 1870(고종 7) 8월 화재로 소실되어 같은 해 10월 충주목사 조병로(趙秉老)가 중건한 것이다. 그 후 내부를 개조하여 중원군 청사로 사용하다가 1983년 군청이 이전하면서 충주시에서 완전 해체하여 복원한 후 그 일대를 공원으로 꾸몄다.

   

 ▽ 중앙공원에 전시 되어 있는 조각품 몇 점을 올려봅니다.









▽ 공원 옆에 있는 술 박물관 , 관람은 무료 입니다. 시간이 없어 관람을 못했네요

▽ 공원앞에는 조정경기장으로 사용되는 남한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습니다.





@, 공원내에 있는 중앙탑










@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충주중앙공원내 칠층석탑)= 국보 제 6호

   중원(中原)문화를 대표하는 유산인 이 탑은 신라석탑 중 유일한 7층 석탑으로 통일신라기에 우리나라의

   중앙에 세워져 "중앙탑"이라고도 한다. 건립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주장이 있으나 대체로 8세기 후반~9세기

  초로 추정되고 있으며, 10여개의 크고 긴 돌로 지대석을 마련하고 2중기단을 쌓아 올렸다. 탑 전체의 높이는

  12.95m 정도로 높이네 비해 너비가 좁아서 치솟는 느낌이 강하여 안정감보다는 상승감이 두드러지는 탑니다.

  1917년 해체 복원시 6층 탑신에서 훼손된 고서류 일부와 구리거울 2점. 목제칠함과 은제사리함이 나왔고 기단

  부에서는 청동함이 발견 되었는데. 구리거울은 고려시대의 것으로 이 때에도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탑은  여러 차례 해체, 복원과정에서 원형과 달라진 부분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이로서 오늘 나 홀로 여행을 멋지게 마치고 귀가한다. 날시가 화창해서 여행하기에는 안성마춤이었다.


▽ 아래지도에서

    1번 : 심항산 종댕이길,   2번: 탄금대.    3번: 중앙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