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유산 탐방

국가유산 탐방 5번째 보은 법주사

노송☆ 2024. 7. 24. 06:24

@ 2024년 7월 6일

@ 오늘은 천동초등학교 42회 동창생들이 모여 보은 법주사로 하계 야유회를 가는 날이다. 수도권에 사는 친구들은 양재역에서 모여 대절 버스를 타고 목천 독립기념관앞에서 천안 지역에 사는 친구들과 함쳐 출발했다. 총 참가인원은 26명 

@ 법주사는 사적 제503.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의 본사. 553년에 의신 조사가 창건했으며 법주사라는 절 이름은 의신조사가 천축으로 구법여행을 떠났다가 흰 나귀에 불경을 싣고 돌아와서 머물렀기 때문에 부처님의 법이 머무는 절이라는 뜻이 법주사라 이름 지었다고 합니다. 절이 위치한 속리산은 예로부터 조선8경으로 꼽히던 산인데, 산세의 아름다움도 있었지만 법주사가 자리한 산이었기 때문에 명산에 빠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러한 아름다움이 담긴 법주사를 직접 느껴보세요.

▼ 일주문 : 절에 들어서는 산문(山門) 중 첫번째의 문.

@, 본래 일주문이라는 말은 기둥이 한 줄로 되어 있는 데서 유래된 것으로, 사주(四柱)를 세우고 그 위에 지붕을 얹는 일반적인 가옥형태와는 달리 일직선상의 두 기둥 위에 지붕을 얹는 독특한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사찰에 들어가는 첫번째 문을 독특한 양식으로 세운 것은 일심(一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신성한 가람에 들어서기 전에 세속의 번뇌를 불법의 청량수로 말끔히 씻고 일심으로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상징적인 가르침이 담겨 있습니다. , 사찰 금당(金堂)에 안치된 부처의 경지를 향하여 나아가는 수행자는 먼저 지극한 일심으로 부처나 진리를 생각하며 이 문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건축양식은 주로 다포계(多包系)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데, 이 문에 많은 현판(懸板)들을 걸어 사찰의 격()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보통 큰 사찰에 들어서면 세 종류의 문을 지나게 되는데. 바로 일주문과 금강문·천왕문, 불이문·해탈문입니다. 사찰의 문을 통과한다는 것은 단순하게 사찰에 들어선다는 의미를 넘어 종교적 마음챙김과 고차원적인 경계를 지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금강문 : 일주문을 지나면 만나는 문, 사찰에서 2번째문

@ 금강문은 부처의 가람과 불법을 수호하는 금강역사가 지키고 있습니다.

▼ 천왕문  : 사찰에서의 3번째문 

@, 천왕문은 가람수호와 악귀 퇴출로 청정도량 유지를 위한 사천왕상이 지키고 있죠. 사악한 기운들의 침입을 막는 수문장의 역할을 하는 것인데요. 사천왕상은 네 방향에 따라 동방 지국천왕, 서방 광목천왕, 남방 증장천왕, 북방 다문천왕이 있어요. 각 수호신들은 손에 서로 다른 무기를 들고 있는데요. 시대와 나라에 따라 들고 있는 지물에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칼과 창, 보탑, 용과 여의주, 비파 등을 들고 있어요. 이들 조각상은 눈을 부릅뜬 채 입을 벌려 악귀 등으로부터 사찰을 지키는 듯한 독특한 모습으로 표현됩니다.

@, 마지막 해탈문은 속된 마음을 돌려서 해탈의 세계에 이르게 한다는 의미를 갖는 문이에요. 인간의 욕심과 욕망으로 인해 발생된 여러 가지 모든 번뇌와 해탈은 둘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불이문(不二門)’이라고도 부릅니다. 이같은 상징적인 의미 때문에 해탈문을 지나면 바로 부처를 모신 불전이 나타나게 돼요. 그간 사찰의 산문 중 국가지정문화유산에 지정된 사례는 영암 도갑사 해탈문이 유일했는데요. 다포집 양식의 독특한 형태를 지닌 영암 도갑사 해탈문은 한국에서 보기 드문 산문 건축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1962년 국보로 지정됐어요.

 

▼ 팔상전(국보 제55호) : 석가모니의 생애를 8개로 나누어 그린 팔상도와 불상을 봉안한 전각.

@, 우리나라의 절에서 언제부터 팔상전이라는 전각을 짓고 그 안에 불상과 불화를 봉안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동국여지승람1381(우왕 7) 건립된 안영사 7층전탑의 내부 벽 동쪽에는 약사회도 藥師會圖, 남쪽에는 석가열반회도 釋迦涅槃會圖, 서쪽에는 미타극락회도 彌陀極樂會圖, 북쪽에는 금경신중회도 金經神衆會圖를 그려 봉안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로 보아 고려말에 이미 불탑의 내부를 교화적 성격의 불화로 장엄했음을 알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는 법주사의 팔상전, 쌍계사의 팔상전 등이 있다.

▼ 법주사 팔상전 팔상도

 

@ 법주사에는 국가지정문화재 국보 3점=팔상전(국버 제55호),쌍사자석등(국보 제5호), 석련지(국보 제64호) 등, 보물 12, 충북 유형문화재가 21, 문화재자료 1점이 법주사에 존재하고 있으며 20118년 6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  대웅보전

@,1987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법주사는 553(진흥왕 14)에 창건되고 776(혜공왕 12)에 다시 지었다. 임진왜란으로 모두 불탄 것을 1624(인조 2)에 벽암(碧巖)이 다시 지었으며 그 뒤 여러 차례 수리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웅보전은 팔상전과 함께 법주사의 중심이 되는 주요 건물 중 하나이다.

법주사 대웅보전은 무량사 극락전, 화엄사 각황전과 함께 우리나라 3대 불전 가운데 하나인 중층(重層) 전각이다. 정면 7, 측면 4칸의 다포계 팔작지붕 건물로 건평 170, 높이 약 19m에 이르는 대규모 건물이다. 위층에 비하여 아래층의 높이가 훨씬 낮아서 탑파와 비슷한 비례를 보이며, 정면에는 모두 살문을 달았고 좌우 측면의 1칸과 뒷면 가운데 칸에는 따로 외짝문을 달았다.

 

▼ 법주사 금동미륵불상

동양 최대의 미륵불 입상으로, 높이는 33m이다. 최초의 불상은 신라 제36대 혜공왕 때 승려인 진표가 청동으로 주조한 후 1000여 년 간 유지되었다. 조선시대에는 흥선대원군이 당백전(當百錢)의 재료로 쓰기 위하여 훼손하였고, 1939년 한국 근대조각의 선구자인 김복진(金復鎭)이 당시 일제강점기 때 독립에 대한 염원을 살려, 사실주의적 기법을 바탕으로 한 그의 불상습작을 원형으로 하여 시멘트로 대불을 제작하였다.

1987년부터 1990년까지 시멘트 미륵대불을 그대로 본떠 청동대불로 조성하는 청동불상 공사가 이루어졌는데, 주재로 쓰인 청동만도 116t이나 소요되었다. 당시 청동미륵대불 조성에는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을 주축으로 한 학자 등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17인 위원회가 5회에 걸쳐 평가회를 가졌고, 하나로 이어지는 청동불상 조성의 예가 세계적으로 없었기 때문에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비철금속분야 연구진까지 참여하였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일부 용접 부위에 부식이 진행되면서 얼룩진 외관 때문에 불상으로서의 품위유지가 어려워지자 2000년부터 불상에 금박을 입히는 개금불사(改金佛事) 공사가 시작되었다. 12억 원의 자금이 들어간 공사는 표면의 이물질을 제거하고 미세한 구멍을 메꾸는 과정부터 옻칠, 금분 칠, 금박 입히기 등 8단계를 거쳐 17개월만인 200265일 끝났다.

순금이 총 80소요되었고 연면적 900에 이르는 겉부분에는 3미크론(0.003) 두께의 금박을 입혔으며 섭씨 80℃∼-30에서 견딜 수 있는 건식 전기도금공법을 통해 광택을 유지할 수 있도록 특수도금하였다. 화강석으로 만든 높이 8m의 기단부 안에는 용화전이 있는데, 미륵보살이 머물고 있는 도솔천의 모습을 형상화하였으며 용화전 벽면에는 13개의 미륵십선도가 부조되어 있다

▼ 법주사 쌍사자석등

 @,보은 법주사 쌍사자 석등, 보은 법주사에 세워진 이형의 석등. 통일신라 전형 양식인 평면 팔각형을 기본으로 간주석을 두 마리의 사자로 표현한 작품. 사진은 간주석으로 쓰인 두 마리의 사자상. 주둥이와 앞 발로 화사석을 받치고 있는 모습이다. 통일신라 8세기 초반(추정), 높이 3.3m, 국보 제5.

 

@ 오늘은 초등학교 동창생들과 즐겁고 유익한 하계야유회날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