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보 여행=

광릉 봉선사와 광릉숲길 그리고 우금저수지 둘레길 걷기

노송☆ 2021. 6. 27. 21:56

@, 2021년 6월 27일 일요일 맑은 후 흐림

@, 비번 날이다. 오전에 휴식를 취하고 시골을 내려 갈까 했는데 딸에게 나드리 가자고 제의가 와서 즈기 승락하고 채비를 하고 나선다. 광릉 "옛고을" 맛집에서 닭백숙으로 점심 식사를 하고 봉선사를 둘러 보고 광릉 숲길을 광릉 수목원 정문까지 왕복 걷고 우금금 저수지에 있는 "카페퍼르" 로 가 커피 한 잔 한다

@ 연꽃축제 준비중 입니다. 연등이 줄줄이 걸려있네요.

 

 

@, 석조각 초대전입니다.

봉선사 느티나무

@ 봉선사 느티나무는 500년 전 세조의 비 정의왕후는 먼저가신 선왕의 위업을 기리고 능침을 보호하기 위해 절을 중창하고 절 이름도 운악사에서 봉선사로 고쳐 불었습니다. 이때 절입구 양지바른 곳에 느티나무 한 그루를 정성스럽게 심었습니다. 예전부터 느티나무가 없는 사찰이 없을 정도로 느티나무는 사찰의 일부와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느티나무가 있는 곳에 사찰을 지은것이 아니라 사찰을 위해 느티나무를 심은 것입니다. 그후 이 느티나무는 대지를 향해 힘차게 뿌리를 내리고 가지는 두팔을 벌려 하늘을 떠받들 듯 우람한 모습으로 성장했습니다. 임진왜란과 6.25전쟁의 격란을 겪으면서도 다치지 않아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기도 했습니다.  느티나무는 오래 사는 나무입니다.  생로병사의 자연 현상 앞에서 초연한 이나무를 보며 사람들은 나라의 안녕과 가족의 건강을  기원하기도 하고 무념 무상의 경지를 깨닫기도 합니다. 지금은 500년 풍상에 옛날의 기개는 찾아볼 수 없지만 매년 봄이면 푸릇푸릇 싹을 내어 자연의 품에서 벗어나 길을 잃지 않도록 우리 현대인들을 인도하는 스승이 되어 우리 곁을 지키고 있습니다.

@ 봉선사는 고려 광종 20년(969)에 법인국사 탄문이 운악산 기슭에 창건하고 운악사라 칭하였다고 한다. 운악사는 조선 세종때 7개의 종파를 선종과 교종, 양종으로 통합됨에 따라 혁파되었다가 예종 1년(1469)에 정희왕후 윤씨가 선왕인 세조의 응침을 보호하기 위해 89칸으로 중창하고 봉선사라 개칭하였다. 봉선사는 명종 6년(1551)에 교종을 대표하는 사찰로서 전국의 승려및 신도에 대한 교학진흥에 중추적 역활을 하였으며 고종 광무 6년(1902)에는 경기도내 본사로서의 역활을 하게 되어 지금에 이른다. 이 절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훼손되어 수차례 중수 하였으나 한국전쟁 때 법당 등 14동 150칸의 사우가 또 다시 완전 소실 되었고 지금의 건물은 모두 근대에 건립된 것이다. 경내에는 조선초기 범종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는 봉선사 대종(1469년, 보물 제397호)이 있으며 짜임새 있는 구성과 사실적 묘사수법을 보여 주는 봉선사괘불(1735)이 있다.

대웅전 마당에 설치 된 연등

 

다른 사찰과는 다르게 "큰 법당" 이라는 한글 편액이 걸려있다.
일주문의 편액도 한글편액 이다.
릉 숲길 입구, 봉선사 진입전 우측에 있다.
광릉수목원 정문까지 왕복 1시간 정도 소요 된다.
우금저수지 카페퍼르 도착
카페에서 바라본 풍경

 

우금저수지 둘레길을 걸으면서
우금저수지 둘레길은 천천히 걷어서 1시간 소요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