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4월 7일 토요일 (1일차)
@, 사촌들과 함께 강원도 동해안으로 1박2일 여행을 다녀왔다.
@,양양군 북쪽 해안에 위치한 낙산사(洛山寺)는 오봉산(五峰山)을 배경으로 하여 신라 고승 의상대사가 관음보살
의 계시를 받고 지은 절이다. 의상이 하루는 바닷가 동굴에 관음보살이 머물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몸소 친견을
하고자 이곳을 찾아왔다. 바닷가 바위 절벽 위에서 여러 날 기도한 의상애용으로부터 여의주를 받고 관음보살
로부터 수정 염주를 받은 후 이를 안치한 곳이 낙산사다. 훗날 의상대사가 수도한 절벽 위에 정자를 세워 의상
대(義湘臺)라 불렀고, 관음보살이 바다에서 붉은 연꽃을 타고 솟아오른 자리 옆에 절을 지어 홍련암(紅蓮庵)이
라 했다. 이곳은 오늘날 우리나라 4대 관음성지(觀音聖地)로서 불교신도들이 많이 참배하고 있다. 참고로 4대
관 음성지(觀音聖地)는 ①낙산사 홍련암 ②강화도 석모도 보문사 ③남해군(南海郡) 금산(金山) 보리암(普提庵)
③통천군 금란굴(金蘭窟)이다. 1977년에 오봉산 자락 신선봉 정상에 동양 최대 해수관음보살을 세웠다.
@, 낙산사는 2005년 4월 5일 양양군 일대 대형 산불로 인해 많은 전각이 소실되었으나, 단원 김홍도의
"낙산사도"와 발굴조사를 근거로 조선 전기 가람배치의 형태로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였다. 낙산사가
천년고찰의 면모를 다시 찾기까지 당시 주지인 정념 스님과 스님들이 국민과 불자들의 원력을 모아 마침내
2013년 11원 복원 불사를 회향하였다.
@ 의상대
의상(義湘)의 좌선(坐禪) 수행처였으며 위치는 낙산사(洛山寺)에서 홍련암(紅蓮庵)의 관음굴(觀音窟)로 가는
해안 언덕에 있다. 멀리 동해를 바라보는 전광 좋은 곳에 위치한 이곳은 의상이 낙산사를 창건할 때 머무르
면서 좌선하였던 곳으로, 원래는 암자가 있었다 하나 한때 폐허가 되었다.
1925년 이곳에 한 정자를 짓고 의상대라 하였다. 8각으로 만들어진 이 아담한 정자는 주위 풍경이 매우 아름
다워 낙산사를 설명할 때에도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예로부터 시인 묵객이 즐겨 찾
는 곳이다.
▽ 의상대앞에서 기념사진
@, 의상대 :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 48호
△▽ 의상대에서 본 홍련암
▽ 홍련암에서 본 의상대
▽ 홍련암 (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 36호
@,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소속인 낙산사의 부속암자이다. 낙산사 의상대(義湘臺) 북쪽 300m 지점에 있다.
672년(문무왕 12)의상(義湘)이 관음보살의 진신(眞身)을 친견하고 대나무가 솟은 곳에 지은 불전(佛殿)이라
한다. 또, 일설에는 의상이 이곳을 참배할 때 푸른 새를 만났는데 새가 석굴 속으로 자취를 감추자 이상히
여겨 굴 앞에서 밤낮으로 7일 동안 기도를 하였다. 7일 후 바다 위에 홍련(紅蓮)이 솟아 그 가운데 관음보살이
현신하였으므로 이 암자 이름을 홍련암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바닷가 암석굴 위에 자리 잡은 이 암자의 법당
마루 밑을 통하여 출렁이는 바닷물을 볼 수 있도록 지어졌다. 의상에게 여의주(如意珠)를 바친 용이 불법을 들
을 수 있도록 배려하여 이와 같이 지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구조를 가졌던 감은사지(感恩寺址)의 법당은 죽어
서 용이 된 문무왕이 출입할 수 있도록 역시 법당 밑에 바닷물이 통하도록 하였다. 신라 및 고려시대의 중창의
역사는 전해지지 않고 있으며 임진왜란 이후인 1752년(영조 28)덕린(德麟)이 중수하였고, 1797년(정조 21)혜근
(慧勤)이 중수하였으며, 1802년(순조 2)청호(晴湖)·흥운(興雲)이 중수하였다. 1975년원철(園哲)이 중창하여 옛
모습을 복원하였다.
현재 홍련암은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36호로 지정되어 있고 당우로는 관음전과 요사채가 있다. 사리탑은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75호로 지정되어 있다. 근처의 해안에는 보기 드문 석간수가 있는데, 이 샘은 원효(元曉)가 양양
의 영혈사(靈穴寺) 샘물을 석장(錫杖)에 담아 끌어왔다는 설화가 전한다.
▽보타전
낙산사가 해수관음상과 더불어 관음신앙의 성지요. 우리나라의 대표적 관음도랑임을 상징하는 전각이다.
1991년 7월에 짓기 시작해서 1993년 4월 10일에 완공하였다. 다행히 2005년 화재때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았다. 법당에는 7관음과 32응신상, 1,500관음상이 봉안되어 있다. 보타전 주위 벽화에는 의상스님의
일대기가 그려져 있다.
▽ 명부전과 지장전
@, 명부전 :지장보살과 함께 십대왕 등 명부의 권속들을 봉안한 전각이다.
사람이 죽은 다음에 염라대왕에게 심판 받는 곳이 바로 명부이다.
@, 지장전 : 지장보살을 단독으로 모신 전각을 지장전이라 한다.
지장보살은 부처가 입멸한 뒤부터 미륵불이 출현할 때까지 천상에서 지옥까지의 일체 중생을
교화하도록 석사모니불의 부촉을 받은 보살이다. 그 상은 깍은 머리에 보관을 쓰지 않고 이마가
둥글며 손에 보주와 석장을 들었다. 염라대왕의 화신이라고도 한다.
▽ 해수관음공중사리탑 ,비 (보물 제 1723호)
@, 해수관음공중사리탑비
1692년 비구 석겸 등이 큰 뜻을 세우고 조성한 사리탑니다. 비문에 따르면 1683(숙종9년) 홍련암 불상에
금칠을 다시 할 때 상서로운 기운이 가득하더니 공중에서 사리가 탁상위로 떨어져 이를 봉안하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탑은 8각원당형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탑신과 상륜은 원구형이다. 기단부의 상대석.
중대석. 하대석에는 가각 다양한 문양을 , 탑신부의 아래쪽에는 연꽃을 새겼으며 옥개석과 상륜부는 통돌로
되어있다. 2006년 해수관음공중사리탑을 해체. 보수하는 과정에서 진신 사리와 장엄구가 발견되었으며 홍련
암으로 가는 입구에는 사리탑의 유래를 새겨 넣은 해수관음공중사리탑비가 있다.
▽ 해수관음상
@ 낙산사 성보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바로 이 해수관음상이다. 그래서 굳이 불자가 아니더라도 동해에
왔다가 낙산사를 찾는 여행객들이면 누구나 들러 참배하는 것이 하나의 정해진 코스가 되었을 정도다.
관음상은 대좌위에 활짝 핀 연꽃 위에 서 있는데 왼손으로 감로수병을 받쳐 들고 오른손으로 가슴쪽에서
들어 수인을 짓고 있다.
▽해수관음상 참배하는 곳
△▽ 꿈이 이루워진는 길
▽ 원톤보전과 7층석탑
@, 원통보전
관세음보살을 모신 전각을 말한다. 관세음은 세간의 음성을 관(觀)한다는 뜻이고 관자체는 지혜로 관조하여
자재한 묘과(妙果)를 얻었다는 뜻이다. 또한 관세음보살은 어디에 있다 하더라도 서방세계에 두루 통하지
않는데가 없어 원통교주(圓通敎主)라고도 한다. 이러한 관세음보살의 성격을 드러내는 전각 이름이 원통전
이다.
관세음보살은 1) 중생에게 온갖 두려움이 없는 무외심(無畏心)을 베푼다는 뜻의 시무외자(施無畏者).
2), 자비를 베푼다는 뜻의 대비성자(大悲聖子)
3), 세상을 구제하므로 구세대왕(救世大王)이라 불리기도 한다.
중생이 고난에 빠져 있을때 열심히 그 이름을 외우면 그들을 구제한다고 한다. 아비타불의 왼쪽에서 부처님의
교화를 돕고 있는 보살로 그 모습에 따라 천수관음, 십일면관음, 등으로 일컫어진다.
@, 원통보전
관세보살님을 봉안한 낙산사의 금당으로 671년 의상대사가 홍련암 관음굴에서 21일 기도 끝에
관세보살님을 친견하고 여의주, 수정염주와 함께 사찰의 건립위치를 전해 받은 곳에 원통보전을
세웠다. 원통보전에 봉안된 건칠관음보살좌상(보물 제1362호)은 고려시대 후반의 전통양식며 강원도
에서는 유례가 없는 건칠기법으로 조성된 불상이다. 2005년 양양산불로 전소되었으나 건칠관음보살상은
금곡 정념승님과 사부대중의 지혜와 원력으로 화마 속에서도 무사할 수 있었으며, 현 전각은 2007년
11월에 복원하였다.
▽ 원통보전의 담장 (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 34호)
원통보전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담장으로 조선시대 세조가 낙산사를 중창할 때 처음 쌓았다고 한다.
높이는 약 3.8m. 전체 길이 약 220m로 일부 원형이 남아 있고 대부분 2005년 산불 이후에 연결 부수하였다.
장대석 기단이나 자연석 석축위에 기와와 흙을 차례로 다져 쌓고 중간에 원형 화강석을 박아 넣어 조형미가
뛰어난 조선시대 사찰의 대표적인 담장이다. 원통보전의 담장은 법당이 성역 공간임을 구분하면서 원형
화강석은 단조로운 벽면의 의장에 긴장감과 변화를 연출한다.
▽ 범종루
원통보전 앞 종각에는 보물 제 479호로 지정된 낙산사 동종이 있었다. 조선시대 1469년(예종1)에 낙산사와
깊은 인연이 있는 세조를 위해 그의 아들 예종이 만들게 한 범종이다. 지금의 종은 2005년 화재 때 소실되었던
것을 2006년 문화재청에서 다시 복원하여 안치하였다.
▽ 낙산사 홍예문
1467년 세조가 행차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사찰의 입구에 세운 무지개 모양의 돌문이다. 당시 강원도에는
모두 26개의 고을이 있었는데 각 고을에서 한 개씩의 석재를 추렴하여 건립한 것이다.
@ 위치 : 강원 양양군 강현면 낙산사로 100 , 전화 : 033-672-2447
@ 낙산사 탐방을 마치고 동명항 88회집에서 맛있는 저녁식사를 했다.
@,동명항 88회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