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년 8월 26일 금요일
@ 도봉의 역사문화에 대한 가치와 의미를 재발견함으로써 내가 살고 있는 도봉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을
갖는 기회를 얻고자 도봉역사문화 탐방길을 나선다.
@ 코스 : 창동역 1번출구 플랫폼창동61 - 쌍문역 - 우이천 - 둘리뮤지엄 - 쌍문시장 - 함석헌기념관 -
김수영문학관 - 방학동 은행나무 - 연산군묘 - 정의공주묘 - 간송 문형필가옥
1, 창동역 1번출구, 플랫폼창동61 (61개의 컨테이너, 8개의 색을 입다)
@, 창동역은 1호선과 4호선이 만나는 환승역이지만 출구는 2개밖에 없다. 어느 쪽으로 나가도 멀리 도봉산과
북한산 풍경을 가로막는 아파트 단지와 식당, 카페, 작은 상점들이 모여 있는 평범한 주거 밀집 지역이다.
서울 동북 4구(성북, 강북, 도봉, 노원) 시민들에게는 교통의 요지이자 만남의 거점이지만 사실 특별한 랜드
마크가 없어 아쉬웠다. 그랬던 창동역 인근 2,790m2부지에 지난 4월29일 레고블럭같은 원색의 컨테이너들
이 세워졌다. 이름하여 플랫폼창동61이다.
@, ‘61’은 사용된 컨테이너의 개수다. 창동 공영주차장이 있던 자리에 8가지 색을 입은 총 61개의 컨테이너가
세워졌다. 영국 런던의 컨테이너 쇼핑센터인 박스 파크Box Park, 재활용 가방브랜드 프라이탁Freitag의
스위스 취리히 본사를 떠오르게 하는 독특한 컨테이너 외관이다.
3층 규모의 플랫폼창동61은 크게 문화예술존, 라이프스타일존, 커뮤니티존의 세 구역으로 나뉘지만 운영은
3개 존이 협업하고 있다. 중앙부에 위치한 400석 규모의 스탠딩 공연장인 ‘레드 박스’를 중심으로 패션 스튜
디오, 포토 스튜디오, 5개의 창동 사운드 스튜디오, 시민들도 이용할 수 있는 레코딩 스튜디오, 15명이 함께
연주할 수 있는 리허설 스튜디오까지가 문화예술존에 속하고, 갤러리 510, 패션 편집숍 ‘믹샵’, 3개의 레스토
랑은 라이프스타일존에 속한다. 커뮤니티존에는 지역협력사업을 지원하는 도시재생지원협력센터와 워크숍룸
이 위치해 있다.
@, 외형은 딱딱해 보일 수 있지만 내용은 소프트하고 알차다. 음악, 패션, 푸드, 포토 등 다양한 콘텐츠를
위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투입됐다. 이동연 한예종 교수의 총괄 아래 뮤직 디렉터 신대철, 푸드디렉터
최현석, 패션 디렉터 한혜진, 포토 디렉터 조세현 등이 그들이다.
다양한 콘텐츠가 있지만 핵심은 음악에 두고 있다. 시나위의 신대철, 이한철, 아시안 체어샷, MC 메타,
잠비나이, 숨 등 레지던스에 입주한 뮤지션들이 협력 레이블을 구축하여 레드박스에서 펼치는 뮤직
큐레이션콘서트, 창동 사운드 페스타 음악과 푸드, 패션이 함께하는 플랫폼 코드 콘서트 등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이 연간 진행될 예정이다. 지역 주민은 물론 청소년, 청년예술가, 직장인 등 서울시민이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체험하며 색다른 일상을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한다는 포부다.
@ 플렛폼창동61 을 탐방하고 쌍문역으로 출발한다.(아래지도 참조)
1, 둘리테마역인 서울메트로 4호선 쌍문역사내
쌍문역사내 기둥, 쉼터, 화장실 곳곳에 만화 아기공룡 둘리 관련 그림과 조형물을 볼 수 있다.
둘리는 만화가 김수정의 쌍문동 작업실에서 태어나 1983년 만화 잡지 보물섬에서 첫선을 보였다.
▽ 쌍문역사내 둘리 그림과 조형물
@ 쌍문역 3번 출구로 나와 수유 방면으로 10여분 가면 우이천이 나온다.
우이천은 수유동과 쌍문동을 나누는 경계천이다. 극 중 빙하 속에 있던 둘리가 발견된 그 하천이다.
수유교와 쌍문교 사이 구간 150m 구간은 둘리 벽화로 장식 되어 있다.
쌍문교까지 벽화를 감상하며 간다. 벽화는 미완이다. 420m 길이로 연장 할 계획이다.
@ 쌍문교에서 둘리뮤지엄 까지는 약 10여분 간 도보여행 길이다. (아래지도 참조)
▽ 둘리뮤지엄 전경
@ 둘리뮤지엄은 둘리 투어의 꽃이다. 지상3층, 지하1층의 규모로 입장료는 13세 미만은 7000원. 13세 이상은
5000천원이다. 13세 미만 가격이 더 비싸다. 아이들을 위한 놀이 기구, 둘리 주제가를 부를 수 있는 노래방
놀이터가 갖추어져 있다. 김수정 작가의 육필원고, 둘리 시나리오, 둘리가 처음 연재됬을 당시의 잡지도 전
시 하고 있다. 둘리 박물관인데 둘리 만화가 없다.
▽ 둘리 뮤지엄내 둘리 도서관
@ 둘리뮤지엄을 나와 쌍문역 3번 출구로 가는 뒷골목은 차 한 대가 지나가기가 어려울 정도로 좁은
재래시장이다. 정겨운 시장길을 15분정도 가면 쌍문역 3번출구이다. (아래지도 참조)
@ 쌍문역에서 함석헌기념관을 찾아가 보자. ( 도보로 10분정도 소요, 아래지도 참조)
@, 함석헌 ( 1901,3,13 - 1989,2,4)
출생지 : 평북 용천, 주요수사상 : 건국포장(2002년) 주요서적 : 뜻으로 본 한국 역사
@, 사상가, 민권운동가 겸 문필가. 명동사건, YWCA 위장결혼식 사건에 연루되어 재판에 회부되는 등 많은
탄압을 받았다. '폭력에 대한 거부', '권위에 대한 저항' 등 평생 일관된 사상과 신념을 바탕으로 항일·
반독재에 앞장섰다.
@, 평안북도 용천(龍川) 출생. 당숙 함일형(咸一亨)이 세운 삼천재(三遷齋)에서 한학을 수학하다가 1914년
덕일학교(德一學校)를 졸업하였다. 1923년 오산(五山)고등보통학교를 거쳐 1928년 일본 도쿄[東京]고등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하여 1938년 3월까지 모교에서 교사생활을 했다. 1940년 평양 근교의 송산농
사학원(松山農士學院)을 인수, 원장에 취임하였으나, 곧 계우회사건으로 1년간의 옥고를 치렀고 1942년
《성서조선》사건에 연루되어 다시 1년을 서대문경찰서에서 미결수로 복역하였다. 8·15광복 때까지 은둔
생활을 하였다.
광복이 되자, 평북 자치위원회 문교부장이 되었으나 같은 해 11월에 발생한 신의주 학생 의거배후인물로
지목되어 북한 당국에 의해 투옥되었다. 1947년 단신으로 월남, 퀘이커교도로서 각 학교와 단체에서 성경
강론을 하였다. 1956년 《사상계(思想界)》를 통하여 주로 사회비평적인 글을 쓰기 시작하였는데,〈한국
기독교에 할말이 있다〉라는 글로 신부 윤형중과 신랄한 지상논쟁을 펴 큰 화제를 일으켰다.
1958년〈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라는 글로 자유당 독재정권을 통렬히 비판하여 투옥되었고, 1960년
이후 퀘이커교 한국대표로서 종교활동도 하였다. 1961년 5·16군사정변 직후부터 집권군부세력에 정면으로
도전하여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였다. 1962∼1963년 미국 국무부 초청으로 각지를 시찰하고 돌아온 후, 언론
수호대책위원회·반대투쟁위원회·민주수호국민협의회 등에서 활동하였다.
1970년 《씨알의 소리》를 발간하여 민중계몽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1976년의 명동사건, 1979년의 YWCA
위장결혼식 사건에 연루되어 재판에 회부되는 등 많은 탄압을 받았다. 1980년 《씨알의 소리》가 강제폐간
되어 문필생활을 중단하였으며, 1984년에는 민주통일국민회의 고문을지냈다. '폭력에 대한 거부', '권위에
대한 저항' 등 평생 일관된 사상과 신념을 바탕으로 항일·반독재에 앞장섰다. 저서에 《뜻으로 본 한국역사》
《수평선 너머》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함석헌 [咸錫憲] (두산백과)
@ 함석헌 기념관
인권운동가 함석헌 선생이 1983년 부터 영면할 때까지 살았던 집이다. 실제 집이었던 만큼 골목길에
숨어 있다. 2013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 되면서 전시 공간과 작은 도서관을 꾸려 작년 9월 개관했다.
전시실에는 수십권의 책이 시커멓 그을린 채로 꽃혀있다. 1985년 화재로 타버린 장서 5000여권중 살아
남은 책들이다. 벽에 걸린 무욕청정(無慾淸淨) 이라는 붓글씨는 선생의 됨됨이를 보여준다. 도서관에서는
그의 씨알 사상이 담긴 저작을 만나 볼 수 잇다.
@ 함석헌 기념관에서 김수영 문학관으로 가보자 (도보 25분 소요, 아래지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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