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보 여행=

주서루와 오죽헌

노송☆ 2016. 7. 21. 15:12

@ 2016년 7월 17일 일요일


▽ 죽서루




강원도 삼척시 성내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누각.

정면 7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건물. 보물 제213호. 삼척시의 서쪽을 흐르는 오십천()을 내려다보는 절벽 위에 세워져 있는데, 예로부터 관동팔경의 하나로 유명하다. 고려 충렬왕 때 이승휴()가 창건하였고, 1403년(태종 3) 삼척부사 김효손()이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누각에는 이이()를 비롯한 여러 명사들의 시가 붙여져 있는데, ‘(관동제일루)’라는 대액()은 숙종 때의 부사 이성조()가 건 것이다.

현재의 크기는 정면 7칸, 측면 2칸의 장방형 평면을 이루고 있지만, 본래는 정면 5칸, 측면 2칸이었다고 생각되는데, 그 이유는 좌우 각 1칸에 놓인 공포()의 모습이 다르고, 또 내부 천장에 당초 측면 밖으로 나와 있던 도리의 뺄목들이 그대로 남아 있음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공포는 기둥 윗몸에서 소첨차()를 보의 방향으로 놓고, 이 위에 대접받침을 놓아 초제공에 놓은 첨차를 받치고, 이 첨차는 외이출목도리()의 장여를 받치고 있는 주심포식()의 건축이지만, 각 부재들은 오히려 다포식의 모습을 더 많이 지니고 있다.

가구()는 7량()으로 앞뒤 평주() 위에 대들보를 걸고, 이 위에 첨차와 소로[]로 싸여진 포작식()의 동자기둥을 세워 종량()을 받치고, 이 종량 위에 초각된 판형()과 대공()을 놓아 종도리를 받치고 있다.

특히, 이 누각에서 주목되는 것은 기단()과 초석이 없이 두리기둥 밑면을 그렝이질하여 자연암반 위에 직접 세운 것이다. 누각 바닥은 우물마루이고, 천장은 연등천장[]이며, 우물마루바닥 밖으로는 계자난간()을 두르고, 기둥 사이는 벽체나 창호 없이 모두 개방하였다.

▽  우물천장

▽  연등천장


▽  자연석 위에 두리기둥을 세웠다.





@ 죽서루 선사 암각화

 암각화는 바위나 절벽 또는 동굴 내의 벽면에 물상, 기호, 성혈 등을 그리거나 새겨놓은 것을 말하는데, 죽서루 선사 암각화는 바위 위에 여성 생식기 모양의 구멍을 뚫어 놓은 성혈 암각이다.
성혈은 선사시대에 풍요, 생산, 다산을 상징하는 ㄱ서으로 한국적인 원시신앙의 형태로 발전하여 조선시대에는 칠월칠석날 자정에 부녀자들이 성혈터를 찾아가서 일곱구멍에 좁쌀을 담아놓고 치성을 드린다음 그 좁쌀을 한지에 싸서 치마폭에 감추어 가면 아들을 낳는다는 민간신앙이 성행했다.
성혈의 제작은 암반을 쪼아 깊이 판 다음 원형의 돌 또는 나무로 연마, 구멍을 넓혀서 만든다.
죽서루 경내의 성혈은 죽서루 동쪽 용문바위 위에 직경 3~4cm, 깊이 2~3cm 크기이며 모두 10개이다.

용문바위

신라 제 30대 문무왕이 사후 호국용이 되어 동해바다를 지키다가 어느날 삼척의 오십천으로 뛰어들어 죽서루 벼량을 아름답게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호국용이 오십천으로 뛰어들 때 죽서루 옆 바위를 뚫고 지나갔는데 그것이 용문바위이다.
그 후 용문바위는 아름다움과 장수, 다복의 기원처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용문을 드나들며 소원을 빌었다.










▽ 오죽헌




▽  배롱나무








▽ 오죽(화본과)

   줄기의 빛깔이 까마귀처럼 검은색이어서 오죽이라 불린다.

   다년생 초본으로 죽순은 5-6원에 나오는데 첫해 초록색이었다가 다음해 검게 된다.

   60년을 살다가 꽃이 피면 죽는다.













@, 강릉 오죽헌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165호로 지정되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지붕 양식이다.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가 태어난 집으로 조선 중종때 건축되었다. 한국 주택건축 중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에 속한다. 4면을 굵은 댓돌로 한 층 높이고 그 위에 자연석의 초석을 배치하여 네모기둥을 세웠다.

건물을 향하여 왼쪽 2칸은 대청이며 오른쪽 1칸에 온돌방을 들였으며, 대청 앞면에는 각각 띠살문의 분합()을, 옆면과 뒷면에는 2짝 씩의 판문()을 달고, 그 아래 벽면에 머름을 댔다. 온돌방은 뒤쪽 반 칸을 줄여 툇마루를 만들고, 앞벽과 뒷벽에 두짝열개의 띠살문을 단 것 이외는 모두 외짝문이다. 천장은 온돌방이 종이천장이고 대청은 연등천장으로 꾸몄다.대들보는 앞뒤 기둥에 걸쳤으나, 온돌방과의 경계에 있는 대량()은 그 아래 중앙에 세운 기둥으로 받쳤다.

대량에서 좌우 측면의 가운데 기둥에 걸쳐서는 충량()을 배치하였으며, 그 상부에는 지붕 합각() 밑을 가리기 위하여 우물천장을 만들었다. 대량 위로 종량()과의 사이에는 대공을 받쳤는데 그 형식은 오래된 수법을 따르고 있으며, 조선 초기의 주심포()집에서 볼 수 있는 대공의 계통을 이은 것이다.

기둥머리에 배치된 공포()는 주택건축에서 보기 드문 이익공형식()이며 그 세부 수법으로 보아 가장 오래된 익공집 건축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쇠서의 곡선에는 굴곡이 남아 있고, 첨차()의 형태는 말기적인 주심초집과 공통되는 특징을 지녀 주심포집에서 익공집으로의 변천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구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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