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유산 탐방

국가유산 탐방= 강화도 전등사 및 고인돌유적

노송☆ 2024. 8. 14. 07:13

@ 2024년 8월 

@, 대한불교조계종 제1교구 본사인 조계사의 말사이다. 381년 아도화상이 창건한 절로, 창건 당시에는 진종사라고 했으나 1282년 충렬왕의 비인 정화공주가 승려 인기를 중국 송나라에 보내 대장경을 가져오게 하고, 이 대장경과 함께 옥등을 이 절에 헌납한 후로 전등사라 불렀다고 한다.

 

▼ 종해루

@, 전등사 입구는 동문과 남문 두 곳이 있다. 동문에는 전등사가 호국불교의 진원지임을 증명하는 양헌수승전비가 있다. 병인양요 때 전략적 요충지였던 전등사에 쳐들어온 프랑스군을 물리치고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양헌수 장군의 공적을 기념하기 위해 고종 10년인 1873년에 건립했다고 한다. 이번에는 남문으로 들어갔다.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종해루를 지나 대조루로 가는 길에는 커다란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있는데 700년이 넘은 보호수들로 노승나무, 동승나무로 불린다.

 

▼ 종해루을 들어서면 보호수인 은행나무 두 그루가 맞이한다. 수령=700년 ,수고=24m 나무둘레=6.5m

▼ 큰나무인 느티나무 수령이 400년 정도 된 보호수 수고 20m, 둘레 4m 

이 느티나무는 1615년에 정등사를 재건할 당기 풍치목으로 심은 나무로 추정된다. 정족산 자락을 휘감아  놓은 천년의 영감은 주변의 오래된 나무들과 산사의 고즈넉한 풍경이 조화를 이루며 한결같은 모습으로 오고가는 이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은행나무 전설

▼ 느티나무

느티나무

▼ 두 그루의 은행나무

▼ 대조루

▼ 대조루를 들어서면 바로 대웅보전을 접하게 되는데 공사중이라 제대로 접할 수 없다. 

▼대조루

▼단풍나무

▼ 대웅보전 과 그 위로 관음전, 관음전 옆에 약사전 

▼대웅보전

▼ 대웅보전 추녀를 받치고 있는 주막 여인

강화도 전등사 대웅보전에 들리면 꼭 건물 바깥 추녀 끝에 달린 나부상을 찾아 보기를 권한다. 불에 탄 대웅보전을 재건축하던 목수가 절 아래 주막 주모와 사랑에 빠져 돈을 맡겨 두었는데 주모가 돈을 들고 도망을 가자 목수가 주모는 영원히 무거운 대웅보전 지붕을 떠받치며 살며 속죄하는 뜻과 불자들은 이를 보고 여색을 경계하라는 뜻에서 만들어 넣었단다. 목수의 깊은 뜻이 재미있다.

▼약사전

▼약사전 내부 

▼명부전

▼ 명부전 이야기

▼ 마애불

▼ 전등사의 철종

 

▼ 능히 모든 만물의 주인이 되도다.

▼ 사철 변화를 따라 시들지 않으니

▼ 형체도 없고 본래 적적하고 고요하여

▼ 천지가 있기 전에 한 물건 있었으니

@ 이것은 "마음" 이니라

 

▼ 좌측으로 부터 명부전, 약사전,관음전,대웅보전

▼ 상사화

▼ 다실에서 차 한잔 

▼ 차 한잔을 하고 동문으로 나가는 길에 크 ㄴ상처가 나 있는 소나무들을 볼 수 있는데 거기에는 아픈 사연이 있다. 

▼ 양헌수 승전비

▼ 동문 매표소

▼ 동문 성문

▼ 동문 안에서

성문을 열고 들어가는 모습으로 성안을 들어 선다.. 삼랑성이란다. 일명 정족산성이라고 부르기도 한단다. 단군이 세 아들에게 성을 쌓게 하고 이름을 삼랑성이라 했다는 기록이 고려사에 남아 있단다. 강화도 가볼만한 곳 인 이곳 전등사 는 이 성안에 있다. 고려시대에는 임시로 지은 궁궐인 가궐이 있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는 정족사 사고와 왕실의 족보를 보관하는 선원보각이 있었단다. 조선 고종 3년에 프랑스 군대가 침공한 병인양요 때 양헌수 장군이 이끄는 군대가 동문과 남문으로 공격해 오던 160여 명의 프랑스군을 무찌른 곳으로 유명하며, 동문 안에는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영헌수승비가 있다. 삼랑성은 강화산성과 더불어 고려~조선시대에 수도 개경과 한양의 외곽을 방어하는 매우 중요한 장소였단다.=인용한 글

▼동문

@ 동문에서 다시 안으로 들어가 남으 주차장에 도착하여 국유산 20번째 강화 전등사 탐방을 마치고 옆에 있는 함허동천과, 정수사를 탐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