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보 여행=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노송☆ 2018. 8. 26. 09:09

@, 2018년 8월 25일 토요일

@, 양재에서 초등학교 동창회 모임을 마치고 덕수궁 돌담길 "고종의 길" 을 산책하고, 시간이 남아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을 탐방했다.


@,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근현대 우리 민족의 수난과 고통을 상징하였던 서대문형무소를 보존, 전시하고 있는

     박물관입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조국의 독립을 쟁취하고자 일본제국주위에 맞서 싸웠던 독립운동가들이,

     해방 이후 독재정권기에는 민주화를 이루고자 독재정권에 맞서 싸웠던 민주화운동가들이 옥고를 치르고

     희생당한 현장입니다. 이런한 고난의 역사에 불구하고 우리 민족은 불굴의 의지로 독립과 민주화를 이루어

     냈습니다. 바로 그 저력과 정신이 깃들어 있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대한민국의 독립과 민주를 향한 투쟁의

     역사가 담겨 있는 현장입니다.

▽ 역사관 입구 전경

▽ 역사관 벽면 사진

▽ 전시관 입구



@,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3.1독립만세운동 직후 1919년 4월 중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 되어

    명실공히 대한민국 정부가 탄생하였다. 임시정부는 독립운동의 최고 지휘부가 되어 연통제를 실시해 국내의

    독립운동 연락망을 구축하였고 외교, 교육, 문화 등 다방면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1940년 9월

   광복군을 창설하여 일제에 선전포고를 하고 대일전쟁을 전개하는 등 광복의 서막을 열었다. 이 과정에서

   국내외에서 활약하였던 많은 임시정부 요인들이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고 그 중 여러명이 옥중

   순국하였다.






▽ 물고문

△ 물고문 : 강제로 머리를 물속에 넣거나 , 코나 입에 물을 마구 들이 부어 호흡을 곤란하게 하여 고통을 주었던 고문 방법, 심지어는 폐에 물이 차서 흉막염에 걸려 매우 고통스럽게 사망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 고무기구들

@, 손톱찌르기 고문은 가늘고 날카로운 꼬챙이를 손톱 밑을 찔러 고통을 주었던 고문 방법, 심할 경우

     손톱뿐 아니라 입 속까지 마구 찔러 고통을 주기도 했으며 그 고통으로 기절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 고문상자


@ 고문상자는 상자 안에 날카로운 못을 박아 놓고, 사람을 상자 안에 집어 넣어 마구 흔들면 못에 찔리게 하여

   고통을 주었던 고문 도구


▽ 독방


▽ 벽관고문



@ 벽관고문은 옴짝달짝할 수도 없이 좁은 공간에 사람을 강금하여 앉을 수도 움직일 수도 없는 고통을 주었던

   고문도구, 벽에 서 있는 관이라 하여 "벽관" 이라 이름을 붙여졌다.





▽12옥사 복도






▽ 타벽통보

@, 타벽통보법은 감방벽을 딱딱 두드려 미리 정해 놓은 암호로 수감자들 사이에 의사를 소통하는 방법이다.

    도산 안창호 선생이 수감되었을때 그 옆방에서 먼저 수감되었던 김정련 선생이 타벽통보법을 알려 주다가

    외곽을 순찰 중이던 간수에게 들키자 김정련선생이 똥통 을 뒤집었고 소란을 피워 간신히 위기를 모면했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 독방


△, 독방

     이 곳은 1평도 안되는 좁은 공간으로 일제가 애국지사들에게 육체적인 고문과 심리적인 정신적 고통을

     주기 위하여 설치한 독방이다. 항일독립운동을 탄압하고자 애국지사들을 악랄한 고문과 혹독한 수형

     생활로 억압하였다. 특히 애국지사들을 특수 범죄자로 분류하여 전기와 변기도 없고 햇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이러한 독방에 투옥시킨 후 고문과 폭행 등 갖은 악형을 일 삼았다.



@ @, 12옥사  먹방

    이곳은 12옥사 내부에 설치되었던 독방으로 한 사람이 겨우 누울 수 있는 약2.4m(0.7평)의 공간이다

    내부는 24시간 내내 빛이 한줌도 들어오지 않아 마치 먹물처럼 깜깜하다 하여 일명 "먹방" 이라 불렀다.

    또한 마룻바닥에 구멍을 내어 용변을 밖으로 처리하게 하는  등 외부와 철철히 격리된 공간이었다.

    이곳에  감금되면 정신공황장애를 겪기도 하는 등 상상 이상의  고통이 뒤따랐다.


@@, 10, 11, 12 옥사 (사적 324호)

      이 곳은 1922년 2층으로 지어진 옥사로 1919년 3.1독립만세운동으로 수감자가 급증하자 신축되었던

      건물이다. 왼쪽부터 제10. 11. 12 옥사로 감시와 통제가 용이하돍 파놉티콘(Panopticon) 구조를 도입하여

      가운데 중앙간수소를 중심으로 각 옥사를 부채꼴 모양으로 배치하엿다. 또한 천정에는 수감자들의 움직임이

      잘 보이도록 복도를  밝게 하기위한 채광창이 설치되었다. 서울 구치소 운영당시ㅣ 훼손되었던 것을 2010년

      보수, 정비 시 원형으로 복원 하였다.



▽ 10,11, 12 옥사 모형도











@ 독방의 용변 배출구

    독방에 감금된 수감자는 외부와 철저하게 격리되었다. 용변을 치울 때조차 사람과 접촉하는 것을 막기 위해

    마룻널 끝 부분에 구멍을 내어 그 구멍에 용변을 보고, 밖으로 배출하게 하였다. 바깥에는 사각의 용변통을

    두어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했으며 그 흔적이 현재 3개의 배출구로 남아 있다.

▽ 용변 배출구






@ 공작사

   이 건물은 1923년에 지어진 공장 건물로 수감자들의 강제노역이 이루워진 현장이다. 각 방은 기계설치 및

   작업을 위해 비교적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있다. 일제는 수감자들의 노동력을 착취하여 식민지배에 필요한

   형무소, 군부대, 관공서 등의 관용물품을 조달하였다. 이곳에서는 방적기가 설치되어 주로 옷감과 의복이

  생산되었으며. 제2차세걔대전 말기에는 군수용품이 생산되었다.

▽ 작업사 내부











@, 추모비

    작품명 : 민족의 혼 그릇

    작   가 : 임승호, 2010년 작

    이 비는 독립운동을 하시다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되어 순국하신 애국선열들의 넋을 기리고 되새기기 위해

    조성되었다. 목숨 바쳐 조국을 지킨 선열들의 민족정신과 자유와 평화을 향한 의지을 한데 모으고 , 그

    모아진 의지을 미래로 나가는 원동력으로 삼고자 하는 의미을 담고 있다. 내부에는 현재까지 발굴된 애국지사

    165분의 명단을 새겨 놓은 것이며 지속적인 조사를 통해 추가 발굴하여 등재 할 예정이다.

▽  추모비




@ 사형장 (사적 제 324호)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된 애국지사들이 억울하게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간 장소이다. 사형장은 지하 1층. 지상

   1층으로 구성된 일본식 목조건물로 1923년 세워졌으며 높이 5m의 담장으로 둘러싸여 외부와 격리되었다.

   사형 장치는 교수형 집행을 위해 개폐식 마루판과 교수줄, 죄수 가림막 뒤쪽에 위치해 마루판을 밑으로 내리는

    레버 장치로 구성되어 있다. 마루판 아래 지하공간은 시신 수습실로 사형수의 사망여부를 확인하였다.

   2000년대 초반 뒤쪽의 깨진 유리창 사이로 사람의 형상이 촬영되었다는 등 여러 소동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 사형장 건물 과 통곡의 미루나무

@ 통곡의 미루나무 = 버드나무과 낙엽활엽 교목, 높이 30m

   이 미루나무는 1923년 사형장 건립 당시 식재되었다.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애국지사들이 이 나무을 붙잡고

   조국의 독립을 이루지 못하고 생을 마갑해야하는 원통함을 눈물로 토해내며 통곡했다고 전해져 "통곡의 미루

   나무" 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한편, 사형장 안쪽에는 같은 시기에 심어진 미루나무가 있으나 억울한 한(恨)이 많이  서려 잘 자라지 못했다는

    일화가 전해지고있다.


▽ 사형장 내부

                               ▽사형장미루나무

  


@ 사형장미루나무

   이곳에 있던 미루나무는 1923년 사형장건립당시 심은 것이다. 미루나무는 생장이 빠르고 이식이 잘되는

   수종인데, 이 나무는 사형장에서 순국하신 선열들의 한이 서려 잘 자라지 못했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2017년 봄ㅣㅍ이 나지 않아 고사한것이 확인되었다. 아전과 보전을 위해 지지대를 설치했으나, 8월 15일

   아침 9시경 세찬 바람에 쓰러져 그루터기만 남겼다.


▽ 사형장안 교수대

▽ 사형장 안 모습

▽ 사형장건물

▽ 시구문

@, 시구문

     시구문은 일제강점기 사형집행 후 시신을 외부로 반출하기 위해 뚫어 놓은 통로이다.

     구타, 고문 등으로 시신에 흔적이 많은 경우, 사형 사실을 외부에 공개했을 때 사회적으로 문제가 우려되는

     경우, 시신을 인도할 유족이 없는 경우 등에도 이용되었다. 외부와 연결된 통로의 길이는 약200m 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확인 되지 않는다. 해방 이후에도 사용하다가 1987년 서울구치소로 철거계획에 따라

     입구를 봉쇄하였다. 지난 1992년 독립공원조성 시 발굴하여 역 40m를 복원하였다.



▽ 격벽장



@ 격벽장

    수감자들이 운동할 때에 서로 대화하는 것을 방지하고 검시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여러 개의 칸막이 벽을

    만들고 각 칸에 수감자들을 분리 수용하여 운동을 시켰던 일종의 운동시설, 1920년 지어졌다가 해방 이후

    철거 되었던 것을 2011년 원 위치에서 약 20m 이전하여 원형 그대로 복원하였다.



▽ 여옥사

@ 여 옥사는 형량이 확정되지 않은 미결수, 사형수를 수감하는 여구치감으로 1918년 전후 설치되었다. 전국

   각지에서 독립운동에 참여한 수많은 여성들이 수감되었고 행방 이후에도 사용되었다가 1979년 철거되었다.

   1987년 서울구치소가 경기도 의왕시로 이전하면서 여옥사터와 지하공간을 발굴, 복원하였고 1992년 보호각

   을 설치하였다. 이후 2009년 원 설계도면이 발견되어 2011년 원형대로 여옥사를 복원하였다.


                              ▽ 망루와 담장

@, 서대문형무소 개소 당시 담장은 나무에 함석판을 덧대어 설치한 것이다. 1923년 4m 높이의 벽돌로 다시

    쌓아 수감자들의 탈옥을 막고 움직임을 감시하기 위해 1930년대 후반 10m 높이로 망루를 총 6개 설치하였다.

    일제강점기 담장은 총 1161m 였으나 현재 앞면 80m, 뒷면 200m 를 복원. 보존하였다. 망루는 총 6개가 있었

   으나 현재 앞쪽과 뒤쪽에 각 1개씩 2기가 보존되어 있다.




△▽ 서대문형무소 전경

▽ 독립문



▽ 영은문주초


@, 서울독립문 (사적 제32호)

    독립문은 1897년에 자주독립의 결의를 다짐하기 위해 세운 석조물이다. 중국사신을 맞이하던 연은문을 헐고

   그 자리에 세웠는데 1979년에 성산대로 공사 때문에 북서쪽으로 70m 이전하여 현재의 위치에 있게 되었다.

   독립협회가 주도하여 국왕의 동의를 얻고 국민의 폭넓은 지지를 받아 완성하였다.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을

   본떠 러시아인 사바틴이 설계하고 한국인 심의석이 시공하였다. 화강암으로 쌓았고, 높이는 14.28m 너비는

   11.48m 이다. 가운데에는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이 있고 문 안쪽에는 정상으로 통하는 돌계단이 있으며 정상

   에는 돌난간이 둘러져 잇다. 이맛돌에는 대한제국 황실을 상징하는 오얏꽃 무늬를 새겼다. 문의 정면과 뒷면

   에 있는 현판석에는 가각 한글과 한자로 "독립문" 을 새기고 그 좌우에는 태극기를 새겼다.


@ 서울 영은문(사적 33호)

   영은문 주초는 모화관의 정문인 영은문의 기둥을 받쳤던 초석이다. 태종 7년(1407년)에 명나라 사신을 영접

   하기 위해 모화루를 지었고 세종 12년(1430)에는 모화관으로 이름을 바꾸고 홍살문을 세웠다. 중종31년(1536)

   에 격이 낮은 홍살문을 없애고 청기와을 덮은 영조문을 만들었으며 3년 뒤에 이름을 영은문이라 고쳤다, 철거

   되기 전 영은문의 사진을 보면 현재의 초석 위에 원ㄱ둥을 세우고 다포로 공포를 짜 올린 뒤 우진각 지붕을 덮

   은 모습이다. 독립협회를 설립한 서재필은 사대외교의 상징인 영은문을 철거하고 독립문을 지를 것을 주장하

   였다.

  그의 의견에 따라 1896년에 모화관을 수리하여 독립관으로 하고. 영은문을 없앤 자리에 독립문을 세웠다. 독립

  문 앞쪽에 있던 초석은 1934년 역간 남쪽으로 올겼다가 1979년 성산대로를 만들면서 독립문과 하께 지금 위치

  로 옮겼다.



▽ 서대문형무소 조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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