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릉이야기

경릉 = 추존 덕종과 소혜왕후의 능(서오릉)

노송☆ 2016. 11. 25. 21:55

@ 2016년 11월 25일 금요일 맑음,  최저: 영하 5도


@ 위치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서오릉로 334-92

경릉은 덕종(德宗 1438-1457)과 소혜왕후 한씨의 합장 능이다. 덕종은 제7대 세조의 맏아들로 1455년(세조1년)

세자로 책봉되었으나 즉위하기 전 20세에 세상을 떠났다. 의경세자(덕종)는 둘째 아들 성종(자산군)이 임금이

되면서 덕종으로 추존되었다.

경릉은 서오릉에서 가장 먼저 조성된 능으로, 같은 능역에 하나의 정자각을 두고 서로 다른 언덕에 능침을 조성한 동원이강릉(同原異康陵)의 형태이다. 원칙적으로 정자각 앞에서 바라모았을 때 왼쪽 언덕(서쪽)이 왕, 오른쪽 언덕(서쪽)이 왕비의 능이지만, 경릉은 오른쪽 언덕(동쪽)에 덕종을 모셨고 왼쪽 언덕(서쪽)에 소혜왕후을 모셨다. 이는 덕종은 왕세자의 신분으로, 소혜왕후는 대왕대비의 신분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신분에 맞게 능을 조성한 것으로 해석 된다.



▽ 경릉 정자각

▽ 비각




▽ 덕종의 능침은 장례를 간소화 치루라는 세조의 명으로 병풍걱과 난간석을 생략하여 봉분을 크게 만들었고 문석인, 석마, 장명등, 혼유석, 석양과 석호만 배치하고 나머지 석물은 생략하였다.

▽ 장명등은 팔각형이다.

▽ 문석인


△▽ 혼유석과 혼유석을 받치고 있는 고석(鼓石)



▽ 서쪽 소혜왕후 능에서 본 덕종릉

▽ 정면에서 본 소혜왕후릉

                       △▽  무석인


                                   △▽ 문석인



                      △▽ 망주석

▽ 호석과 양석, 호석은 꼬리를 길게 늘어뜨린게 특이하다.

▽ 양석

▽  난간석


▽ 작명등





▽ 능침 뒤에서 본 소혜왕후능









@ 소혜왕후능이 덕종(의경세자)  능 보다 석물이 많은 것은 덕종은 세자신분으로 죽어서 원의 형태로

    만들었고, 소혜왕후능은 의경세자가 덕종으로  추존 된 후에 죽어서 왕비의 능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남편인 덕종보다 석물이 많다.

@ 소혜왕후   

조선 세조의 장남인 덕종의 비(). 성은 한씨(). 1455년(세조 1) 세자빈에 간택되어 수빈()에 책봉되었으나 세자가 횡사하였다. 1470년(성종 1) 소생 혈이 성종에 즉위하여 세자로서 죽은 덕종을 왕으로 추존하자 왕후에 책봉되고, 이어서 인수대비()에 책봉되었다. 소생으로는 월산대군()과 성종(자을산군)이 있다. 성품이 총명하고 학식이 깊어 정치에도 많은 자문을 하였다. 불경()에도 조예가 깊어 범() · 한() · 국() 삼자체()로 된 불서()와 부녀자를 위하여 지켜야 할 도리인 《여훈()》을 간행, 후세에 귀중한 연구자료가 되고 있다. 손자 되는 연산군이 생모 윤비()가 모함에 의하여 폐위, 사사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박해를 가하려 하자, 병상에 있던 대비가 이를 꾸짖으니 연산군은 머리로 대비를 받아 얼마 후 절명하였다. 능은 경릉()으로 경기도 고양군 신도면 서오릉(西)에 덕종과 합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