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릉이야기

영월 장릉이야기

노송☆ 2016. 7. 18. 06:41

@ 2016년 7월 16일 토요일


@ 장릉은  조선 6대 단종의 능

    단종은 제5대 문종의 아들로 1452년문종이 되어 2년4개월만에 세상을 뜨자 12세 어린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어머니 현덕왕후는 단종의 출산 후유증으로 출산 후 하루 만에 승하하였고 단종의 작은 아버지 수양대군이

    계유정난(1453)으로 권력을 잡자 1455년(단종3년) 세조에게 왕위를 내주고 상왕으로 물러났다.

    이듬해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등 사육신이 시도한 단종 복위 운동은 실패로 돌아가고 1457년(세조3년)  단종은

    노산군으로 감봉되어 영월 청령포로 유배되었으며 그 해 여름 홍수로 강물이 범람하여 물에 잠기자 영원읍내에 있는 

   괸풍헌으로 거처를 옮겨으며 그 해 10월 24일 세조가 내린 사약을 받고 승하하였다.  

   1516년(중종11) 장릉은 비로소 왕릉의 모습을 갖출 수 있었고 1698년(숙종24) 묘호를 단종, 능호를 장릉이라 하였다.

▽ 박충원의 낙촌비각

    영원군수이던 낙촌 박충원이 노산묘를 찾은 일에 대한 사연을 기록한 기적비각이다.

△  충신 박충원은 충종26년(1531) 문과에 급제 하였으며 사후에 문경공으로 시호를 받앗다.

      중종 11년(1516년) 노산묘를 찾으라는 어명에 의하여 찾아 치제하였으나 그 후 방치 되었던

     묘를 중종36년(1541) 영원군수로 부임한  박충원의 현몽에 봉축하고 제물을 갖추고 제문을 지어 치제 하였다.


▽ 왕릉을 올라가다가 내려다 본 전경. 박충원 비각과 화장실

▽ 단종의 장릉 , 왕릉중에 가장 단졸한 릉이다.


▽  장명등


▽△ 좌우측의 문인석   장릉에는 무인석이 없다.

▽  장릉에서 본 정자각과 전경

▽  장릉으로 올라오는 길은 소나무 숲길이다.

▽ 홍살문




▽  장판옥

    이 건물은 정조15년 (1791)에 건립한 것으로 단종을 위하여  목숨을 받친 충신위 32인, 조사위 186인. 환자군노 44인.

    여인위 6인을 합하여 268인의 위패을 모셔놓은 곳이다.

▽ 배식단

   이곳은  단종을 위하여 목숨을 받친 충신위, 조사위, 환자군노위, 여인위의 영령을 추모하기 위하여 매년

   단종 제향과 함께 제사를 지내는 제단으로 사용 하는 곳이다.



▽ 단종비각


▽ 정자각







△▽ 영천












▽ 엄흥도정려각




▽ 재실에 있는 향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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