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보 여행=

용산 가족공원 산책

노송☆ 2024. 3. 12. 21:35

@ 2024년 3월 12일

@ 오늘은 동창들과 오이도로 관광 가기로 했지만 흐리고 빗방울이 떨어져 오이도 여행을 포기하고 늦게 나홀로 용산가족공원을 산책하기로 했다.  용산가족공원은 개장할 때 가보고 그 이후로는 가보지 못한 곳이다. 국립중앙박물관과 옆에 붙어 있다. 중앙국립박물관은 몇번 가 보았지만 주변은 둘러 보지 못해 이번에 함께 둘러 볼까 한다. 

@  4호선 이촌역에서 하차하여 2번출구 쪽으로 나와 국립중앙박물관 방향으로 나와 중앙국립박물관 좌측 CU 매점을 통과 하여 박물관 건물 좌측으로 돌아 박물관 뒤쪽으로 간다. 아래 지도 참조

▼ CU 건물 가운데 공간으로 통과하여 좌측길로 가면  박물관 건물 좌측 자작나무 길로 간다. 

▼ 산수유가 피고 있네요

▼자작나무길입니다. 

▼모란입니다. 

▼ 화장실있는 후문

▼국립중앙박물과 후면입니다. 

▼ 박물관 뒷뜰입니다.

▼ 아래지도 6번 지점이 공사중이라 통행금지 되어 아래지도 7,8번 길이용 박물관 앞면으로 이동합니다. 

▼ 박물관  우측 뜰에 전시되어 있는 석물 부도 (지도 10번위치)

▲ 좌측 염거화상탑 : 이 승탑은 탑지가 함께 전해져, 승탑의 주인공과 만들어진 연대를 알 수 있는 매우 귀중한 탑이다. 신라문성왕 6년에 선종 산문 가운데 하나인 가지산문의 제2대 선서인 염거화상을 위해 만든것으로 팔각 집 모양에 사천왕 등의 부조상을 새긴 전형적인 승탑의 모습이다. 이후 만들어진 승탑들은 이 승탑을 따라 대부분 팔각 구조에 화려한부조상을 새겼다.

▲ 우측 봄림사 진경대사 보월능공탑 : 이 승탑은 통일신라 말기의 고승으로 신라 선종 산문중 하나인 봉림산문을 세운 진경대사 심희의 묘탑이다. 팔각 집 모양을 충실히 따르고 있으며 , 전체적으로 날씬한 몸체에 장식을 절제하면서도 변화를 시도한 조형적인 특징을 보인다. 특히 기단부 가운데 꽃띠를 두른 북 모양 중대석은 같은 시기 석등에서도 보이는 형식 가운데 하나다. 

 

▼ 좌 : 보리사대경대사 현기탑비,  우 : 흥법사 진공대사탑과 석관

▲ 좌 : 보리사 대경대사 현기탑비 : 이 탑비는 신라 말에서 고려 초기에 활동하던 성주산문의 대경대사  여염의 업적을 기록한 비석이다. 대사가 입적한 지9년이 지난 고려 태조 22년에 세워졌다.  거북 받침돌의 거북머리가 용머리로 바뀌었는데 이러한 경향은 통일신라 말부터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탑비에서 나타나는 특징 가운데 하나다. 머릿돌의 구름과 용은 매우 생동감 있게 조각되었다. 

▲ 우: 흥법사 진공대사 탑과 석관 : 이 승탑은 신라 신덕왕과 고려 태조의 왕사를 지낸 진공대사 충담의 묘탑이다. 진공대사의 입적과 함께 세원진 것으로 여겨지는 이 승탑의 탑신은  팔각 집 모양을 기본 평면으로 하고 있지만, 기단 중대석은 원통형에 구름과  용무뉘가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어매우 이채롭다. . 이 탑과 함께 반견된 석관을 통해 ,고승의 신신을 화장뿐만 아니라 매장도 했음을 알 수 있다. 

▼ 좌 : 거돈사 원공국사 승묘탑,  우: 현화사 석등

▲ 우측 : 거돈사 원공국사 지종의 묘탑이다. 강원도 원주 거돈사터에는 이 승탑과 짝을 이루는 원공국사의 탑비가 남아 있다.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승탑 형식을 이어받아 단정하고 균형밥힌 팔각의 형태에 사천왕,팔부증, 등의 부조상을 새겼다.  탑신 정면 문 위에 탑 이름을 새긴 점이나 탑신에 꽃띠 장식을 한 것 등은 고려 시대에 새롭게 시도된 것이다.

▲ 좌측 : 현화사 석등 : 이 석등이 있던 현화사는 고려 현종이 돌아가신 부모의 명복을 빌기 위해 지은 사찰이다. 고려의 큰 사찰 현화사의 명성을 짐작게 하듯, 석등의 규모가 크고 당당하다.현종은 삼각산 삼천사 주지 법경을 현화사의 초대 주지로 임명하고 칠층석탑과 이 석등을  만들게 하였다. 석등앞의 배례석은 출토지를 알 수 없으나 영주의 부석사의 경우처럼 석등을 향해 예를 갖추는 설치물로 함께 전시하였다. 

▼ 현화사 석등 전면

▼ 보신각종

@ 보신각종은 보물2호로 조선 세조 14년 원각사(현재 탑골공원에)에 걸기 위해 만든 종이다. 절이 없어진 후 광해군 11년 보신각으로 옮겨져  오전 4시에 33번(파루), 오후 10시에 28번(인정)울려 도성 문을 여닫는 시간을 알리는 데 쓰였다. 하나의 몸체에 양쪽으로 용머리가 달린 장식 고리(용뉴)가 달려 있으며 몸톹 가운데는  세 겹의 굵은 띠가 둘러져 있다. 이런한 모양의 종은  고려 말부터  유행하기 시작하여 조선시대에 들어와 널리 만들어진다. (위 지도 11번지점)

▼ 보신각종

▼ 보신각에서 가족공원으로 넘어 가는길

▼ 위 지도 12번 지점 가족공원 잔디광장

▼ 잔디광장 둘레는 맨발 걷기 코스로 만은 사람들이 맨발로 걷기하고 있었다. 

▼ 태국기 광장

▼ 작은 도서관 쉼터에서 책을 볼 수 있게 도서를 준비했다. 

▼ 어린이 놀이터도 있네요

▼ 손으로 만든 손

▼ 이 출입문을 나가 육교을 건너가 좌측 교회에서 12시~13시 까지 5,000원에 점심식사를 제공 한다.  가성비에 맛 좋고 양도 적당하다, 커피도 있어 산책중 배가 고프면 나가 식사 하고 다시 오면 된다. 

▼ 의자에 앉아 커피 마시며 잠시 여유있는 사색에 잠겨 본다.

▼ 오늘

▼봄맞이 청소 중

▼ 여유있는 소풍을 즐기는 중년들

@ 위 지도 17~ 18번 사이 에는  석탑과 석불들이 조성된 공간이다. 

▼ 부처

천수사 삼층석탑

▲ 천수사 삼층석탑은 탑의 몸체를 받치고 있는 기단부는 통일신라 석탑에서 보이는 2층 기단형식이다. 탑신부 몸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어졌으며, 1층과 2층 탑신 아래에는 굄돌이 놓여져 잇다. 지붕 처마 층단받침은 4단으로 되어 있고 지붕의 윗면은 경사가  완만하다.  탑의 꼭대기에 해당되는 상륜부에는 네모난 지붕 모양 장식만이 남아 있다. 

▼ 천수사 오층석탑

▼ 고달사 쌍사자 석등

@ 고달사 쌍사자 석등은 두 마리 사자가 불발기집을 받치고 있는 매우 특이한 형태의 석등이다. 통일신라시대에 이러한 형태의 석등이 등장 하지만 이 고달사 쌍사자 석등은 다른 쌍사자 석등과 달리 웅크린 사자가 불발기집을 받치고 있어 이채롭다. 이 석등은  고달사가 우리나라 3대 선원의 하나인 고달원으로 명성을 떨치며 고려시대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 홍제동 오층석탑

▼ 갈항사 동서 삼층석탑

▼ 남계원 칠층석탑

 

▼안흥사 오층석탑

▼ 온녕군 석관

▼ 조선시대 무덤을 지키는 석양

▼ 조선시대 무덤을 지키는 문인석

▼ 태실석함

▼ 무덤앞을 밝히는 장명등

▼히어리

▼올괴불나무

▼생강나무

@ 화단에 꽃들이 피어 나는 4월말 이나 5월에 방문하면 아름다운 공원을 감상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