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보 여행=

강원도 태백 1박 2일 여행=추전역 과 정암사

노송☆ 2021. 7. 21. 22:09

@ 2021년 7월 13일

@,@. 추전역(Chujeon station, 杻田驛)은 강원도 태백시 화전동에 위치한 역이다. 주변이 모두 고지대로 둘러싸여 있으며, 역사의 위치가 해발 855m로 우리나라의 철도역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다. 특별히 관광 열차가 운행되는 시기 외에는 여객 취급이 중지되었고, 무연탄 화물취급만 한다. 2013년 4월 12일부터 2015년 5월 31일까지 중부내륙순환가 운행하였다. 현재는 레일크루즈해랑의 일부 코스가 이곳에 정차한다.

 

@,추전역은 이번이 두번째 방문인데 옛날 눈꽃 관광열차 타고 온적이 있는데 그 당시는 생기가 넘치는 역으로 기억이 된다. 지역 주민들이 나와 지역 특산물을 팔고 했는데 지금은 적막이 흐르는 역이 되었다.

광차

@, 광차= 규격 : 기관차 95톤, 광차 3톤 = 광산에서 광석이나 석탄을 운반하는 장비로서 초기에는 사람이 칠통이나 들것을 사용하다가 우마차로 발달하였다. 궤도를  이용하면서 나무로 만든 광차를 사용하다가 현대에는 철재광차를 사용하여 용량도 크게 만들어졌으며 동력은 전기나 디젤을 사용한다.

 

 

역구내 모습

@, 추전역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세워진 기차역이다. 1973년 10월 16일 험준한 산악과 협곡을 따라 부설된 태백선이 개통되면서 해발 855m 의 높은 지대에 위치한 이 역은 태백선 건설공사 중 가장 힘들었던 정암터널(4,505m)을 옆에 두고 있으며 이곳의 ㅈ;명이 옛부터 싸리밭골이라 전해 내려옴에 따라 이를 본따 杻田驛 이라 이름 지었다.

@ 추전역을 돌아보고 귀경길에 5대적멸보궁인 정암사를 방문한다

수마노탑

정암사는.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月精寺)의 말사이다. 우리 나라 5대 적멸보궁(寂滅寶宮)의 하나로서 갈래사(葛來寺)라고도 한다. 신라의 대국통(大國統)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한 사찰이다.

주차장에 있는 문화해설사의 집

사적기(事蹟記)에 의하면 자장율사는 말년에 강릉 수다사(水多寺)에 머물렀는데, 하루는 꿈에 이승(異僧)이 나타나 “내일 대송정(大松汀)에서 보리라.”라고 하였다. 아침에 대송정에 가니 문수보살(文殊菩薩)이 내현하여 “태백산 갈반지(葛磻地)에서 만나자.” 하고 사라졌다. 자장율사는 태백산으로 들어가 갈반지를 찾다가, 어느 날 큰 구렁이가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을 보고 제자에게 ‘이곳이 갈반지’라 이르고 석남원(石南院)을 지었는데, 이 절이 정암사이다.

정암사 일주문

이 절에는 자장율사와 문수보살 사이에 있었던 유명한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자장이 이곳에서 문수보살이 오기를 기다리던 어느 날, 떨어진 방포(方袍)를 걸친 늙은 거사가 칡 삼태기에 죽은 강아지를 담아 와서 자장을 만나러 왔다고 하였다. 시자(侍者)가 스승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을 나무라자 거사는 스승에게 아뢰기만 하라고 말하였다. 시자가 자장에게 이 사실을 알렸으나 미처 깨닫지 못하고 미친 사람으로 생각하여 만나지 않겠다고 하였다. 거사는 “아상(我相)을 가진 자가 어찌 나를 알아보겠는가.” 하고 삼태기를 쏟자 죽은 강아지가 사자보좌(獅子寶座)로 바뀌었으며, 그 보좌에 올라 앉아 빛을 발하면서 가 버렸다. 이 말을 들은 자장이 황급히 쫓아가 고개에 올랐으나 벌써 멀리 사라져 도저히 따를 수 없었다. 자장은 그 자리에 쓰러진 채 죽었는데, 뼈를 석혈(石穴)에 안치했다고 전한다.

범종루

또, 창건에 관한 일설에는 자장이 처음 사북리 불소(佛沼) 위의 산정에다 불사리탑(佛舍利塔)을 세우려 하였으나, 세울 때마다 붕괴되므로 간절히 기도했다. 그랬더니 하룻밤 사이에 칡 세 줄기가 설상(雪上)으로 뻗어 지금의 수마노탑(水瑪瑙塔)·적멸보궁·사찰터에 멈추었으므로 그 자리에 탑과 법당과 본당(本堂)을 세우고, 이 절을 갈래사라 하고 지명을 갈래라고 했다고 전한다.

이 절은 창건에 얽힌 전설 외의 역사는 거의 전하지 않는다. 절 입구에는 일주문(一柱門)이 세워져 있고, 일주문을 들어서면 왼편에는 근년에 완공된 선불장(選佛場)이 있다. 오른쪽에는 고색(古色)의 적멸보궁이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3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수마노탑을 등에 지고 있다.

중간 도량가에 종루가 있고, 선불장 옆에는 무량수전(無量壽殿)과 자장각(慈藏閣)·삼성각(三聖閣)이 있다 이 중 적멸보궁은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석가모니불의 사리를 수마노탑에 봉안하고 이를 지키기 위하여 건립한 것으로, 수마노탑에 불사리가 봉안되어 있기 때문에 법당에는 불상을 모시지 않고 있다. 이 보궁 안에는 선덕여왕이 자장율사에게 하사했다는 금란가사(錦襴袈裟)가 보관되어 있었다고 한다.

수마노탑

적멸보궁 뒤쪽의 수마노탑은 국보 제332호로 지정되어 있다. 자장율사가 643년(선덕여왕 12) 당나라에서 돌아올 때 서해 용왕이 자장율사의 신심에 감화되어 마노석(瑪瑙石)을 배에 싣고 동해 울진포를 지나 신력으로 갈래산에 비장해 두었다가, 자장율사가 이 절을 창건할 때 이 돌로써 탑을 건조하게 했다고 하여 마노탑이라 하였다 한다. 또한, 물길을 따라 이 돌이 반입되었다고 해서 수 자를 앞에 붙여 수마노탑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 탑을 세운 목적은 전란이 없고 날씨가 고르며, 나라가 복되고 백성이 편안하게 살기를 염원하는 데 있다고 한다. 또 이 절에는 금탑과 은탑의 전설이 있다. 정암사의 북쪽으로 금대봉이 있고 남쪽으로 은대봉이 있는데, 그 가운데 금탑·은탑·마노탑의 3보탑이 있다고 한다. 마노탑은 사람이 세웠으므로 세인들이 볼 수 있으나, 금탑과 은탑은 자장율사가 후세 중생들의 탐심(貪心)을 우려하여 불심이 없는 중생들이 육안으로 볼 수 없도록 비장(秘藏)하여 버렸다고 전해진다 자장율사는 그의 어머니에게 금탑과 은탑을 구경시키기 위하여 동구에 연못을 파서 보게 했는데, 지금의 못골이 그 유지이며 지상에는 삼지암(三池庵)이 있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그 밖에도 적멸보궁 입구의 석단에는 선장단(禪杖壇)이라는 고목이 있다. 이 나무는 자장율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심은 뒤 수백 년 동안 자랐으나 지금은 고목으로 남아 있다. 신기한 점은 고목이 옛날 그대로 손상된 곳이 없다는 것인데, 다시 이 나무에 잎이 피면 자장율사가 재생한다고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 정암사적기에 따르면 수마노탑은 신라의 승려인 자장이 당나라에서 귀국할 때 서해 용왕이 마노석 조각을 주며 탑을 세워줄 것을 부탁한 것이 유래로전해지고 있다. 마노란 석영에 속하는 보석을 가르킴며, 건립의 출처가 용궁이라는 물 水에서 나왔다고 해서 수마노라는 명칭이 붙었다. 즉 수마노탑은 용궁에서 나온 푸른 마노석의 불탑이라는 의미다. 그러나 탑의 암석은 실제로는 마노가 아닌 칼슘과 마그네슘의 탄산염인 돌로마이트다. 이를 통해 푸른색이 전승의 변화를 거쳐 마노로 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모전석탑은 석탑에 비해 경고성이 떨어진다.  이로 인해 수차례의 보수가 이루어졌으며 현재의 수마노탑은 고려시대에 다시 축조된 것이다. 이와 관련된 기록이 1972년 해체보수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또 이 때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사리장엄구 등이 함께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수마노탑은 총 7층에 높이는 9M, 너비는 3.04M 로 모전석탑으로서는  드물게 탑 정상의 금속 상륜부와 풍경 등이 거의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다.  국보 제 332호 이다.

수마노탑에서 본 정암사 전경 소박한 풍경이다.
자장율사 주장자, 오른쪽 적멸보궁은 수리중이다.
자장율사 주장자(柱杖子)

@, 자장율사 주장자 : 이 주목은 약 13,00년전 자장율사가 정암사를 창건하시고 평소 사용하시던 주장가를 꽃아 신표로 남기신 나무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가지 일부가 회생 상장되고 있어 자장율사의 옛 모습을 보는 듯하다.

정암사 조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