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보 여행=

강원도 낙산사

노송☆ 2020. 3. 2. 07:30

@ 2020년 2월 24일 월요일

 @, 아침식사후 가족들은 온천장으로 나는 설해원을 산책하기로 하고 숙소를  나왔다.

   ▽ 설해원 숙소

▽ 골프장

▽ 생강나무



▽ 뒤로 설해원이 보입니다.

▽ 양양 비행장 관제탑, 설해원은 양양비행장 옆에 있다.

▽  양양비행장 활주로, 뒤로 동해바다가 보인다.


▽ 설해원

▽ 양양비행장 터미널



▽ 설해원입구에 도착합니다.

▽ 주차장은 만차입니다.

▽ 관음성지 낙산사에 도착합니다.

▽ 낙산사 동선 코스





▽ 홍예문



▽ 팀플레이숙소



@ 빈일루는 동해 일출을 맞이하는 누각이라는 뜻으로 사천황문과 응향각 사이에 자리한 누각이다.

    조선중기 박종(1677~1750)의 기행문인"동경유록"에 송월로와 함께 처음 빈일루라는 이름이 나온다.

    만해 한운용의(건봉사급건봉말사사적)에 1800년대 후반 1900년대 초 두번에 걸쳐 중수한 것으로 기록

     되어 있다.

    2005년 산불로 훼손된 이후 발굴된 유규와 감홍도의 낙산사도를 참고하여 저연 3칸 측면3칸 규모로, 전면은

    팔작지붕, 후면은 맞배지붕 형식의 누각을 세웠다. 2009년 10월 12일 낙성하엮으며 누각의 일부 기둥은

   지난 2005년 화마를 견딘 느티나무를 손질해서 세웠다. 현판은 총무원장을 지낸 지관 스님이 썼다.






▽ 원통보전, 낙산사는 대웅전이 없고 관음보살을 주불로 모시는 원통보전만 있다


@ 원통보전은 관음보살님을 봉안한 낙산사의 금당으로 671년 의상대사가 홍련암 관음굴에서 21일 기도 끝에

   관음보살님을 친견하고 여의주, 수정염주와 함께 사찰의 건립위치를 전해 받은 곳에  원통보전을 세웠다.

   원통보전에 봉안된 건칠관음보살좌상은 (보물362호) 고려시대 후반의 전통양식이며 강원도에서는 유례가

   없는 건칠기법으로 조성된 불상이다. 2005년 양양산불로 전소되었으나 건칠관음보살상은 금곡 정념승님과

  사부대중의 지혜와 원력으로 화마 속에서도 무사할 수 있었으며, 현 전각은 2007년 11월에 복원하였다.




@  칠층석탑은 의상대사가 처음 세울때 3층이던것을 1467(세조13년) 7층으로 만들어 낙산사의 보물인 수정염주

    와 여의보주를 봉안하였다고 전한다. 탑의 높이는 6.2m로 부분적으로 손상된 곳이 있으나 상륜까지 원형대로

     보존 되고 있다.

   조선시대 다층석탑의 전형적인 시대별 특징을 갖고 있어 보물로 지ㅓㅇ된 석탑니다. 기단부에는 정방형2단 지

   대석이 놀여 있는데 윗면의 24판 겹연꽃 무늬가 특징이고 탑신부는 각 층의 탑신석 아래 굄돌을 놓고 위에는 3

   단의 24판 겹연꽃 무늬가 특징이고, 탑신부는 각 층의 탑식석 아래 굄돌을 놓고 위에는 3단의 옥개받침을 올린

    간략한 구조 형식이며, 상륜부는 노반 위에 청동 복잘 보륜 등을 장식하였다.

▽ 원통보전 담장


@, 원통보전 담장은 원통보전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담장으로, 조선 시대 세조가 낙산사를 중창할 때 처음

    쌓았다고 전한다. 높이는 약 3.8m. 길이 약 220m로 일부 원형이 남아 있고 대부분 2005년 산불 이후에

    연결 보수하였다. 장대석 기단이나 자연석 석축 위에 기와와 흙을 차례로 다져 쌓고 중간에 원형 화강석을

    박아 넣어 조형미가 뛰어나 조선 시대 사찰의 대표적인 담장이다. 원통보전의 담장은 법당이 성역 공간임을

    구분하면서 원형 화강석은  다조로운 벽면의 의장에 긴장감과 변화을 연출한다.


▽  원통보전에서 해수관음보살상으로 가는길






▽ 관음보살상에서 본 동해바다









▽ 보타전





▽ 매화나무






▽ 의상대에서 본 홍련암






▽ 홍련암에서 본 의상대

▽ 홍련암










@, 낙산사 탐방을 마치고 상운 메밀촌가서 육계장메밀칼국수로 점심식사를 하고 귀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