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릉이야기

융릉 == 추존 장조(사도세자)의황제와 헌경의황후 홍씨의 합작릉

노송☆ 2017. 1. 7. 21:14

@ 2017년 1월 3일 금요일 맑음


@ 장조는(1735-1762 사도세자) 제21대 영조의 둘째 아들이자 제22대 정조의 생부이다. 어려서부터 영특하고 서예와 무예에 뛰어났으나 영조를 대신하여 정치업무를 보게 되면서 노론과 마찰을 빛게 되었고, 나경언의 고변으로 결국 뒤주에 갇혀 비참하게 최후를 맞았다. 1762년 영조는 28세나이에 죽은 세자를 슬파하면서 사더라는 시호를 내렸다. 사더세자의 아들 정조가 즉의하자 존호를 장헌으로 올렸고 1899년 (광무3년)에 장조로 추존 되었다.

헌경의황후는 (1735-1815) 혜경궁 홍씨)는 영의정 영풍부원군 홍봉환의 딸로 1744년 세자빈에 책봉되었다. 사도세자가 세상을 뜬후 혜빈. 정조 즉위 후에 궁호를 혜경으로 올렸다. 혜경궁 홍씨의 자선전 화고록이자 궁중문학의 백미라고 평가 받는 [한중록]을 남겼다. 1899(광무3) 사도세자가 장조로 추존되면서 헌경의황후로 추존되었다.


▽ 조선왕릉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제 되었다.


▽ 정문앞에 있는 향나무

▽ 재실과 융건릉 정문 모습

▽ 정문에 들어서 좌측에 있는 왕릉 박물관

▽ 융건릉 가는길

▽ 융릉 금천교

 ▽ 금천교 :  왕릉의 금천을 건너는 다리로서 속세ㅔ와 성역의 경계 역활을 한다.

▽ 융릉의 공간 구성 상의 특이점 중 또 하나로 꼽을 수 있는 곳은 정자각과 능침이 이루는 축이다.

    대개의 왕릉에서 정작각과 능침이 일직선상에 축을 이루는 반면 융릉은 일직선을 이루지 않고 있다.

   융릉의 참도는 매우 넓으며 조선 후기 양식의 전형을 보여준다.

▽ 정자각

▽ 정자각의 동계

▽ 정자각 배위청 기둥에 박힌 철물 용도는?



▽ 정자각의 모루단청


▽ 정자각 정전의 천정 단청



▽ 융릉의 모습

    효종 이후 사라졌던 병풍석, 봉분의 인석 우ㅟ 꽃봉우리 석물 등  그 어느 능보다도 화려하고 정성을

   들인 능이다.

▽ 장명등 :

▽ 무인석

▽ 문인석

    복두를 쓴 일반적인 왕릉형식이 아닌 금관조복을 입고 있다.


▽ 혼유석

▽ 고석

▽ 지대석

▽ 인석 : 연꽃형태로 조각한 것이 독특하다.

▽ 난간석이 없다.


▽ 석양

▽ 석호

▽ 우석 무늬

▽ 면석 무늬



△▽  만석

▽ 무인석에는 석마가 없다.

    무인석과 문인석을 같은 계단에 설치하였다.



▽ 뒤쪽 잉에서 본 융릉


▽ 융릉에는 왕릉에서 보기 드문 원형 연못인 곤신지가 있다. 원형 연못은 용의 여의주를 상징하는 것으로

   아버지를 연모했던 정조의 마음을 엿 볼 수 있다.



▽ 사도세자(장조) 가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