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릉이야기

태릉 = 문정왕후,

노송☆ 2016. 11. 19. 22:38

@ 2013년 8월 31일 토요일

@ 위치 : 서울시 노원구 화랑로 681(공릉동 산 223-19)

 

@ 태릉은 조선 제11대 중종(재위 1506-1544)의 두 번째 계비인 문전왕후 윤씨(1501-1565)의 무덤이다.

문정왕후는 자신이 중종 옆에 묻힐 요량으로 장걍왕후의 능 옆에 있었던 중종의 정릉을 풍수지리가 안 좋다 하여 선릉옆으로 옮겼다. 하지만 새료 옮긴 정릉의 지대가 낙아 홍수 피해가 자주 일어나자 결국 그 자리에 묻히지 못하고 현재의 위치에 예장되어 중종옆에 묻히려던 소망을 이루지 못했다.

△ 홍살문에서 본 정자각

△ 참도가 넓은 편이다.

 

△▽ 비와 비각

 

△▽ 사초지 아래에서 본 능역

 

△예감

 

△정자각 통편에는 커다란 향나무가 3그루 있다.

@ 태릉은 왕비의 단릉이라 믿기 힘들많큼 웅장항 능으로 조성당시 문정왕후의 세력이 얼마나 컸넜는지짐작케한다.

 

△▽무인석과 문인석

 

 

@봉분을 감싼 12면 병풍석은 12지신상과 구름 문양을 새겼고 병풍석 위 만석 중앙에 12간지 문자를 새겼다. 봉분 바깥쪽으로는 12칸의 난간석을 둘렀으며, 봉분 앞에 상석과 망주석 1쌍을 세웠다.

 

△문정왕후느 파평 윤씨로 윤지임의 딸이며 명종의 어머니다. 1517년(중종 12)왕비에 책봉 되었으며 1545년 인종이 재위 8개월만에 죽고 12살에 명종이 즉위하자 모후로서 수렵청정을 하였다. 이때 남동생 윤원형이 궐력을 쥐게 되자. 대윤이라고 하는 윤임 일파를 몰아내는 을사사화를 일으겼다.

을사사화는 표면적으로 윤씨 외척간의 싸움이었으나 사림파에 대한 훈구파의 공격이었다. 1498년(연산군 4) 이후 약 50년간 관료 간의 대립이 표면화되어 나타난 대옥사는 을사사화로서 마지막이 되었다. 사림파는 4차례의 사화를 통해 큰 피해를 입고 세력이 약해졌으나, 후에 서원과 향약으로 선조 때 다시 중앙정권을 장악한다. 그러나 사림파는 사학에서 생겨난 당파의 분파를 토대로 붕당을 형성하였다.

△면석의 12지신상

△▽ 봉분 주위로 석양, 석호 각 2쌍씩 교대로 배치 시켰다.

 

△ 뒤에서 본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