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기행

법주사 == 충북 보은군

노송☆ 2015. 11. 24. 22:16

@  2015년 11월 22일 일요일

 

△ 일주문      (현판에 "호서 제일 가람" 이라고 써있네요,)

@ 법주사는 신라 진흥왕 14년(553)에 의신조사가 처음 이룩했다. 천축으로 구법여행을 갔다 돌아온 의신조사는 흰 나귀에 불경을 싣고 절 지을 터를 찾아다녔는데 지금의 법주사터에 이르자 나귀가 더 가지 않고 제자리를 맴돌았다고 한다. 의신조사가 주변을 살펴보니 절을 지을 만했으므로 이곳에 절을 짓고 부처님의 법이 머문다는 뜻에서 사명을 법주사()라 했다. 그후 성덕왕 19년(720)에 절을 중수했고 혜공왕 12년(776)에 진표율사가 중창하고부터 대찰의 규모를 갖추었다. 이것은 사적기 등에 적힌 초창기 법주사의 내력이다.

 

 

△  천왕문

△  천강문   ( 뒤로 팔상전 , 좌측으로  청동미륵대불이 있습니다)

 

△ 청동 미륵 대불

 

△ 팔상전

@ 팔상전이라는 전각 이름은 팔상도를 모신 건물임을 뜻한다.

  1), 팔상도는 석가모니가 도솔천에서 내려오는 장면,

  2),룸비니 동산에서 마야부인에게서 태어나는 장면,

  3),궁궐의 네 문 밖으로 나가 세상을 관찰하는 장면,

  4). 성을 넘어 출가하는 장면,

  5),설산에서 고행하는 장면,

  6),보리수 아래에서 마귀를 항복시키는 장면,

  7),성불한 후 처음으로 녹야원에서 설법하는 장면,

  8),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하는 장면 등 석가모니의 일생을 여덟 장면으로 표현한 그림이다.

     3층까지 한 통으로 트인 팔상전 안에는 가운데 네 기둥 사이를 막아 벽을 만들고 한 면에 두 장씩 팔상도를 두었다. 팔상도

     앞의 불단에는 각각 불상을 모시고 앞쪽에 오백나한상을 세 줄로 배치했다. 그림은 동에서 시작하여 남, 서, 북 방향으로

     배치되었으므로 차례대로 그림을 보노라면 저절로 중심칸 주변을 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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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상전 벽화

 

△▽ 쌍사자 석등

@,국보 제5호인 쌍사자석등은 신라 성독왕19년(720년)에 조성된것으로 추정된다. 높이 10척에 이르는 8각 석등으로

    두 마리 사자가 마주 서서 뒷발로 복련석를 디딤하여 앞발로 양련석을 받드고 있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사자가 디딤한 복련석은 8각 지대석 위에 놓여 있으며 양련석 주위에는 이중으로 연꽃잎이 조각되어있다. 신라시대

    석등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신라시대 석조예술품 중 뛰어난 걸작 중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 팔상전과 청동미륵대불 그리고 쌍사자석등

 

△▽ 철확

@ 높이 1.2m 지름 2.7m 둘레 10.8m 되는 쇠솥은 쌀 40가마를 한꺼번에 담을 수 있다고 하는데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 사천왕석등과  대웅보전

대웅보전은 1624년(인조 2)에 벽암이 중창할 때 건립한 것으로, 총 120칸에 건평이 170평, 높이가 61척에 달하는

     대규모의 건물이다. 보물 제915호로 지정되어 있다. 다포식() 중층건물로서 무량사() 극락전, 화엄사

    각황전(殿) 등과 함께 우리 나라 3대 불전(殿)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내부에 모셔진 삼존불은 벽암이 중창할 때 조성한 것으로 중앙에는 법신()인 비로자나불(), 좌측에

    보신()인 노사나불(), 우측에 화신()인 석가모니불이 봉안되어 있는데, 각각의 앉은키가 5.5m,

    허리둘레만도 3.9m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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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보전에 보셔진 삼존불

@, 대웅보전 내부 중앙에는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왼쪽에는 노사나불, 오른쪽에는 석가모니불을 모셨는데, 흙으로 만들어

     천으로 두르고 금을 입힌 불상으로 손으로 빚은 불상중 가장 큰 불상이라고 한다.

@, 흙으로 빚어 만든 불상을 "소조불"이라 한다.

@ 3신불

   1, 비로자나불 : 진실로 영원한 것을 밝힌다는 진리의 몸인 법신.

   2, 노사나불(아미타불) : 과거의 오랜 수행에 의 한 과보로 나타날 보신

   3, 석가모니불 :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위하여 여러가지 화신으로 나타난 육신

 

 

△ 대웅보전의 포

@ 대웅전의 양식은 내외 2출목으로 공포을 짜 기둥 위는 물론 기둥 사이의 평방 위에도 공포를 놓은 다포식으로 되어 있다.

    공포는 1층은 내외 2출목으로 2층은 내회 3출목인데 1층 살미는 수서형, 2층 살미는 양서형이어서 변화를 보인다. 공간포

    는 전체적으로 매 칸마다 1구씩 배치되었다. 1층 살미의 수서형은 좀 독특해서 한 번 둔각으로 꺽었으나 윗면은 사선으로

    깍앆다., 제3살미는 끝에 솟은 연봉이나 연꽃이 조각되었고, 그 위쪽의 보머리는 주심포 상부에서 4모를 죽인 8각형이고,

   간포 상부에는 당초무늬가 조각된 형태이다.  창방머이의 연화당초각(蓮花唐草刻)도 주목된다.

 

△ 대웅보전의 담도

@, 기단 한가운데 널찍한 계단을 마련했는데 좌우에 둥글둥글한 소맷돌을 세웠고 가운데에 넓적한 돌 석 장을 나란히 하여

     계단을 좌우로 나누었다. 이는 부처님을 연에 태워 내모시거나 할 때 그 위로 연이 지나가도록 한 답도()로 이해된다.

     소맷돌 바깥쪽에는 굵직한 넝쿨이 뻗어나가는 듯한 모습으로 연잎과 연꽃이 새겨졌고 소맷돌 위쪽에는 돌원숭이가 한

     마리씩 앉았다. 계단석 중에는 발딛는 자리에 연잎이 선각된 것이 있다.

 

 

△, 법주사 대웅보전 용마루에는 색이 다른 2장의 기와가 있는데 이는 임금이 하사한 표시라고 한다. 실제로 임금과

     정유재란에 참여한 사찰에는 청기와가 있다고 한다.

 

 

 

 

 

 

 

 

 

 

△회견보살상

@희견보살상을 가섭존자상으로 보는 견해도 있는데, 석가모니의 제자 가섭은 미륵불이 하생할 때 가사와 발우를 미륵불에게

   바치라는 수기를 받았다. 때문에 이 보살상을, 발우를 받들고 여벌의 가사를 걸친 채 미륵불을 기다리는 가섭의 모습으로 볼

   수도 있다.

 

△▽ 석연지

@, 국보 제64호로 지정되어 있는 석연지는 신라 성덕왕 19년(720년)경에 조성된 것으로 8각의 지대석 위에 3단의 괴임을

     만들고 다시 복련을 두른 굄돌을 올렸으며 그 위에 구름을 나타낸 동자석을 끼워 연지를 받피고 있다. 원래 이 석연지는

     법주사 본당이었던 용화보전이 있었을때 그 장엄품을 성치했던 것으로 극락정토의 연지를 상징하며 화강석으로 조각한

     것으로 전하여지고 있다. 구품 연화장으로 환희원만 영원무궁 상품상생 광도중생 무량수의 감로천이다.

 

 

△ 마애여래의상

@ 보물 제216호 마애여래의상은  사리각옆 추래암 암벽에 조각되어 있는 불상으로서 둥근 얼굴과 감은 듯이 뜬 눈.

   그리고 두틈한 입술, 반듯한 어깨, 유난히 잘록한 허리등 비사실적 추상형을 띠고 있다. 의자가 된 연봉은 연꽃잎이

   불상 주의를 둘러싸고 있으며 발아래 지면에는 절반만 조각된 연화문상석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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