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보 여행=

함양여행 2일차 ==

노송☆ 2018. 11. 8. 11:39

@ 2018년 10월 28일 일요일

@ 금대암


@ 금대암은 신라 태종 무열왕 3년(656년)에 행호조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대한불교조계종 제

   12교구인 해인사의 말사오서 금대사라고도 한다.

   1950년 6.25전란 떼 소실된 뒤 금대암 복구 기성회가 조직되어 중건되었다. 금대암은 신라 도선국사가 참배지

   로 인정했으며 고려 보조국사 서산대사가 수도 청취하였다는 구전이 내려오고 있다.

   경내에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4호로 지정된 "금대사 3층석탑" 과 문화재자료인 금대암동종(제268호),

   금대암 신중태화(제269호), 그리고 경상남도 기념물 제212호인 금대암 전나무가 있다.

   조선조 탁영 김일손이 쓴 기행문 (1489년4월 16일)의 기록에 일두 정요창 선생과 함께 산사을 찾으니 20여명의

   스님이 정진도량 하고 있었다고 하였으며 뇌계 유호인 선생의 시중에 "잘있느냐 금대절아 송하문이 옛날같구

   나, 송풍에 맑은 꿈 깨어 문득 잠꼬대를 하는 구려" 라는 시가 남겨져 있는 고찰이다.  


▽ 금대산 3층석탑

@ 금대사 3층석탑

   금대사는 656년(신라 태종무영왕 3) 에 행평조사가 창건하였다고 하지만 그 이후의 역사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다만 신라 때의 도선국사가 이곳을 참배지로 정하였으며 고려 때의 보조국사와 조선시대 서산대사가 도를 닦던

  곳이라고 한다, 현재의 건물은 6.25때 소싱된것을 다시 건립하였다.

  이 탑은 일반적인 석탑에서 볼 수 있는 받침대가 없고 바윗돌 위 바로 1층의 몸체를 세은 특수한 양시의 석탑이

  다.

  받침대가 없기는 하지만 지붕돌이나 몸체, 그리고 꼭대기 부분은 거의 제 모습을 갖추고 있다. 탑신에는 가가

  모서리기둥을 조각한 것 외에 다른 장식을 덧붙이지 않았다.

  지붕돌 아래의 받참은 3층으로 처리하여 일반적인 통일싱라의 5층탑 양식과 차이가 있다. 지붕동의 처마는 밑선

  이 일직선으로 뻗어가다가 모서리 쪽에서 살짝 위로치켜 올라가 있다. 꼭대기에는 장식을 받치는 받침대와 사발

  을 뒤엎어 놓은 형상의 복발, 위로 향해 핀 연꽃, ㅏ퀴, 덮개가 온전하게 남아 있지만 원망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

  다. 특히 지붕돌 부분은 날렵하게 처리되어 있어서 매우 경괘한 느낌을 주고 있다. 이 탑은 금대사 창건 당시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지만 조각 수법 등으로 봉 때 통일신라시댜대 말기 혹은 고려시대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된

  다.



                                                       ▽ 금대사 전나무


@, 함양 금대암 전나무 : 경남 기념물 제 212호 = 경남 함양군 마천면 가홍리

    전나무는 소나무과에 속한 늘 푸른 큰키나무로 대략 25m 내외 까지 자란다. 재목이 곧아 건축자재로 많이

    쓰인다. 껍질은 잿빛을 띤 갈색에 작은 비늘이 잇고 잎은 납작한 바늘 모양이다. 봄에 꽃이 피고 가을에

    녹갈색의 솔방울 같은 열매을 맺는다.

    이곳 전나무는 1403년(태종3)에 행호조사가 창건한 금대암의 입구에 서 있다. 나무의 나이는 대략 500여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가 40m, 둘레가 2,92m로 현존하는 전나무중 가장크고 오래된 것으로 평가된다. 조선

    성종 때의 문인이었던 유호인(1445-1494)은 이곳 금대암을 둘러보고 난 뒤 쓴 시에서" 잘있느냐 금대암아,

    송하문이 옛 같구나, 송풍에 맑은 꿈 깨어 잠꼬대를 하는도다" 라고 하였다. 이로써 보건대 금대암 주위에는

    조선전기에도 소나무과에 속하는 나무가 많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 금대암 나한전

▽ 나한전 주위 단풍



▽ 금대암에서 바라 본 지리산







△▽ 금대산에서 본 지리산 전경

▽ 금대리 다랭이논



@ 함양 개평마을

@,개평이라는 지명은 두 개울이 하나로 합쳐지는 지점에 마을이 위치해 ‘낄 개()’ 자 형상을 하고 있다 하여

   유래되었다. 또한 마을 앞에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어 ‘개들’이라고도 불린다.

  '좌 안동, 우 함양'이란 말이 있다. 빼어난 유학자들을 많이 배출한 영남 사림을 대표하는 두 지역을 여섯

   글자로 함축한 말이다. 그만큼 선비의 기개, 가문과 학문에 대한 자부심, 뿌리 깊은 양반 사상을 엿볼 수 있는

    고장이다. 함양 가운데서도 지곡면에 자리한 개평마을은 조선시대 성리학을 대표하는 동방오현 가운데 한

   사람으로 추앙받는 일두 정여창 선생의 고향이다. 이 마을에는 일두 고택을 비롯해 수백 년 동안 대물림해온

   유서 깊은 고택이 즐비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함양 개평마을 - 일두 정여창의 선비정신을 만나다 (한국관광공사의 아름다운 대한민국 이야기)


@ 함양 일두고택 = 중요민속문화재 제 186호 = 경남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

▽ 솟을 대문









△▽ 주택안에는 멋진 소남와 전나무가 있다.




▽ 매점이 있어 커피 한 잔 ~~~~

▽ 옛날에 사용 하던 우물




▽ 마을 전경











@ 함양 용추계곡

▽용추계곡 가는길

▽ 용추계곡 가는 길에 삼형제 바위

@ 삼형제 바위는 계곡물을 뛰엄뛰엄 가로지른 세개의 바위를 두고 "삼형제 바위'라한다. 아주 우애가 깊은

   세형제가 부모의 산소를 가기 위해 이곳 계곡물을 건너게 되었는데 때마침 장마라 계곡물이 철철흘러 넘치며

   급류었다. 큰형이 생각 끝에 동생들을 업어 건너기로 작정하고 우선 막내부터 건너놓았다. 다시 물을 건너는데

   마침 이곳을 지나던 마귀 할멈의 눈에 뛰었다. 마ㅟ할멈은 평소부터 이 삼형제의 우애를 잔뜩시기 하던 처였다.

  마귀할멈이 주술을 피우기 시작하니  우선 강 가운데의 큰 형부터 바위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런 큰형을 보며

  두 동생은 발을 동동구르며 형을 불렀지만 이미 자신들도 바위로 변해가고 있었다. 훗날 우애가 깊은 이들 세형

  제가 변한 이 바위를 " 삼형제바위" 로 부르게 되었다



▽ 장수사 조계문

@ 장수사 조게문(용추사 일주문) 경남 유형문화재 제 54호 = 경남 함양군 안의면 상원리

   일주문은 절 입구에 좌우 하나씩 기둥으로 지붕을 받쳐세운 문으로 속세를 떠나 부처의 세계로 들어가는 첫

   관문이다. 항상 한결같은 마음으로 수도하고 교화하라는 의미에서 세운 문이다. 이곳 용추계곡에는 487년

  (신라 소지왕9)에 각연대사가 청건하였다고 하는 장수사가 있었다. 장수사는 신라시대의 원효와 의상을 비롯해

  조선시대의 무학, 서산, 사명 등 여러 고승이 수도한 이름있는 절이었고 용추사는  원래 장수사에 딸린 작은 암

  자였다. 그런데  6.25 전쟁 때 장수사가 일주문만 남고 타버리자 1959년 중건하면서 이름을 용추사로 바꾸었다.

  " 덕유산 장수사 조계문" 이라고 쓰여 있는 일주문 현판만이 장수사의 흔적을 말해준다. 이 일주문은 1702년(숙

  종28)에 건립된 것으로 알려져있다. 

  일반적인 일주문이 그렇게 크지 않은 보통의 맞배지붕으로 만들어진데 비해 이 일주문은 화려한 다포계 팔작

  지붕의 양식를 하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기둥 간격4M, 직경 1.2M 가 넘는 튼튼한 기둥에 떠 받쳐진 일주문은

  그 규모가 매우 장대하다. 화려하고 웅장한 모습의 지붕 때문에 기둥이 오히려 작아 보일 정도다. 혀를 말아 올

  리듯이 길게 뻗어 나간 장식들은 기둥 위에서 구름과 연꽃으로 피어 오르고 기둥머리의 봉황조각은 길게 돌출된

  서까래와 함께 처마선을 타고 올라 천상 세계가 바로 여기라고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아마 이곳에서부터 부처

  의 극락세계가 시작된다는 종교적 의미을 상징적이면서도 장엄하고 화려한 구조로 표현한 것 같다.


@ 옛 장수사터

  

@ 용추사는 장수사 일주문 아래 좌측의 도로를 따라 5분정도 더 올라 가야 한다.

▽ 용추교 다리에서


▽ 용추사계곡

▽ 용추계곡단풍


▽ 용추사 주차장


▽ 용추폭포


@ 함양 신진동 용추폭포 명승 제85호

   이 폭포는 함양군 안의면 상원리 용추계곡에 위치한다. 옛부터 이 계곡은 많은 선비들이 찾아 글을 남긴

   곳으로 심진동(尋眞洞)이라 하여 화림동, 원학동 과 람께 안의삼동의 하나로 불러왔다. "진경을 찾아 스스로

   떠난다" 는 뜻이 있는 심진동의 대표 경관인 이 폭포는 주변의 울창한 산림 속에서 암반과 잘 어우러진 명승

   으로 높이는 30M 이고 용소의 직경은    25M이다.


@  전설

    이 폭포에는 108일 동안 금식 기도를 하면 용이 된다는 이무기에 관한 전설이 있다. 이 이무기는 온갖 고난을

    참으며 기도를 하였는데, 108일을 하루 앞둔 날, 용이 된다는 기쁨에 날짜도 잊고 하늘로 치솟고 말앗다. 그러

    자 이무기는 천둥 벼락을 맞고 인근의 위천면 서대기못에 떨어지게 되엇다. 서대기들(들판)은 이 이무기 썩은

    물로 3년 동안이나 풍년 농사를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




▽ 용추사 전경


@ 용추사 = 경남 함양군 안의면 상원리 962번지

    이 사찰은 신라 소지왕9년(467)에 각연대사가 창건한 옛 장수사와 4대 부속 암자 중에서 현존하는 유일한

    사찰로서 대한불교 조계종 12교구인 해인사의 말사(末寺)이다

    한국 전쟁 6.25 때 소실되어 1953년 안의면 당본리에 있는 봉황대에 별원을 차려 주변 경관이 수려한 자연

    속에 위치하고 있으며 옛 장수사의 흔적을 간직한 경남 유형문화재 제54호(덕유산 장수사 일주문)을 비롯한

    많은 문화재가 보존되어 있다.  또한 이 곳은 장수사 시절 설파상언대사가 전국의 승려들을 모아 놓고 화엄경

    을 강의했던 유명한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용추사 뒷편 용추계곡 상류에는 기백산 국립공원과 용추자연휴양림이 있고 서북쪽 산 정상에는 정유재란 때

    왜구와의 현전이 벌어졌던 황석산성(사적 제322호)이 있다.



















 ▽물레방아  공원


@ 2일차 코스: 금대암 - 금대산- 다랭이논 - 개평한옥마을 - 용추계곡(용추사) - 물레방아공원 -귀가
































































'=도보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청와대앞길 과 삼청동길 지나 서울성곽길 걷기  (0) 2018.11.14
화담숲  (0) 2018.11.14
함양여행=1일차  (0) 2018.11.06
충주 악어봉 과 단양 잔도길  (0) 2018.11.06
싱가포르 여행 - 2일차  (0) 2018.1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