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릉이야기

온릉 == 조선11대 중종의 원비 단경왕후

노송☆ 2017. 5. 12. 19:52

@ 2017년 5월 11일 목요일

@ 남한에 있는 조선 왕릉 40기중 마지막으로 양주시 징흥면에 있는 온릉을 답사한다.

    왕릉을 답사를 시작 한지 약 4년만에 완전 답사를 끝내는 순간이다.

    서오릉관리사무소에 촬영 허가를 받고 약속시간 보다 일찍 갔던니 안내 하는 분이 나오지 않아 좀

    기다려야 했다.


▽ 온릉

▽ 1호선 가능역앞에서 의정부-구파발을 운행하는 360번 버스를 타고 신흥유원지 정류장에서 내리면

    보이는 온릉 이정표

▽ 온릉은 비공개 능이라는 것을 알리는 안내판

▽ 온릉 출입문

▽ 온릉진입로

▽ 사랑하며 의지하면 정답게 살아가는 나무



▽ 입구 옆에 있는 재실

▽ 조선 왕릉은 세걔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 온릉전경

▽ 홍살문 밖에서 본 온릉

▽ 온릉의 향로와 어로


▽ 정자각

    다른 왕릉의 정자가에 비해 규모가 작다, 배위청이 3칸인데 온릉는 2칸이다.

▽ 정자각에서 본 홍살문

▽ 정자각 배위청 천정


▽ 온릉의 정자각은 포는 일익공이다.

▽ 비각

@ 온릉은 조선 11대 중종의 원비 단경왕후(1487-1557)신씨의 능이다. 단경왕후는 중종반정으로 진성대군이

    완위에 올르자 왕비로 책봉되었다. 그러나 부친 신수근이 반정으로 참살되어 죄인의 딸이 왕비로 부적하다

    는 반정공신들의 주청으로 책봉 7일만에 폐출되어 사저로 나갔다. 소생없이 71세로 승하했으며 친정묘역

    언덕에 장사 지냈다.

    1698년 숫종은 연경궁내에 사당을 세워 춘추로 제사를 지내게 하고 한식에는 묘재를 지내게 했다,

     1739년 영조는 시호를 단경, 능호를 온릉으로 추봉하고 새로이 상설을 설치하면서 추봉된 정릉, 사릉의

     상설을 따랐다.

    병풍석과 난간석을 생략하고 능원 주의로 양석과 호석 각 1쌍을 배치하였고 혼유석 1좌의 양측에 망주석

   1쌍을 세웠으며 3면의 곡장을 설치하였다. 원 단 아레에 문석인과 마석 1쌍씩, 중앙에 장명등석이 있고 능

    아래에 재실이 있다.

△▽  정면에서 본 온릉

         봉분에 병풍석 및 난간석도 없다.

▽ 무인석 없이 문인석만 세웠다.

▽ 좌측의 석마는 입 주의가 훼손되었다.

▽ 좌측 문인석



▽ 옆 모양



▽ 뒷 모습




▽ 멍주석












▽  잔듸 보수 작업중

     봉분에는 병풍석은 물론 난간석도 없다.

▽ 장명등

▽ 석마

▽ 얼굴이 휀손된 우측 문석인


▽ 우측 문석인의 뒷 모습

▽ 우측 망주석

▽ 우측 망주석에 새켜진 세호 아래로 향하고 있다


▽ 호석


▽ 장명등 하부 무늬

▽ 고석(혼유석 받침돌)


▽  혼유석과 고석

▽ 측면에서 본 장명석





▽ 산신석

▽ 수복방 터

▽ 어정


▽ 옛날 의정부와 수색을 오고가던 교외선 철길 온릉역을 가 보았다.

   그 흔적을 찾아 볼 수 있었다.▽ 의정부 방향

▽ 수색방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