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보 여행=

도산서원

노송☆ 2017. 4. 7. 05:54

@ 2017년 4월 2일 일요일 맑음


@, 도산서원은 건축물 구성면으로 볼 때 크게 도산서당과 이를 아우르는 도산서원으로 구분된다. 도산서당은

     퇴계선생이 몸소 거처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고, 도산서원은 퇴계선생 사후 건립되어 추증된 사당

     과 서원이다. 도산서당은 1561년(명종 16)에 설립되었다. 퇴계선생이 낙향 후 학문연구와 후진 양성을 위해

     지었으며 서원 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퇴계선생이 직접 설계하였다고 전해진다. 이때 유생들의 기숙사

     역할을 한 농운정사와 부전교당속시설인 하고직사(下庫直舍)도 함께 지어졌다.


▽ 도산서원 가는 길


@, 도산서원은 퇴계선생 사후 6년 뒤인 1576년에 완공되었다. 1570년 퇴계 선생이 돌아가시자 1572년에

    선생의 위패를 상덕사(보물 제211호)에 모실 것을 결정하였다. 2년 뒤 지방 유림의 공의로 사당을 지어

    위패를 봉안하였고, 전교당(보물 제210호)과 동 · 서재를 지어 서원으로 완성했다. 1575년(선조 8)에

    한석봉이 쓴 “도산서원”의 편액을 하사 받음으로써 사액(賜額)서원으로서 영남유학의 총본산이 되었다.


@ 퇴게 이황 선생은 연산군 7년(1501) 현재의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에서 출생하여 선조 3년(1570)에

   돌아가셨다.

   34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단양군수, 풍기군수, 공조판서, 예조판서, 우찬성, 대제학을 지냈으며 사후에

   영의정으로 추증되었다.

   70여 회나 벼슬을 사양하고 학문연구, 인격도야, 후진양성에 힘써 이 나라 교육 및 사상의 큰줄기를

   이루었고 만대의 정신적 사표(師表)가 되었다.

   선생은 명종 16년(1561)에 도산서당을 세웠고 사후 4년만인 선조 7년(1574)에 문인과 유림이 서원을

   세웠으며 선조 임금은 한석봉 친필인 도산서원(陶山書院)의 현판을 사액(賜額)하였다. 1870년에 정부

   에서는 서원을 보수정화하여 성역화하였다.

   주요 저서로 계몽전의, 성합십도, 도산십이곡, 주자서절요, 심경후론, 예안향악, 자성록 등이 있다.




@,1615년(광해군 7) 사림이 조목(趙穆)을 종향(從享)했다. 1792년(정조 16) 정조 임금이 치제(致祭)를 내리고

   도산별과(陶山別科)를 시행하였다. 1796년(정조 20) 시사단 (試士壇)을 세우고, 1819년(순조 19) 장서고

   (藏書庫)인 동광명실(東光明室) 건립하였다. 1870년(고종 7)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서 제외되었으며,

   1930년(경오년) 서광명실(西光明室) 증건(增建)하였고 1932년(임신년) 하고직사(下庫直舍) 이건하였다





@, 1969년 본 서원을 중심으로 임야 및 전답 19필 324.945㎡이 사적 170호로 지정되었고, 1970년부터

     대통령령으로 보수 · 증축 사업을 진행하였으며 우리나라 유학사상의 정신적 고향으로 성역화 되었다.

    1977년 도산서원관리사무소가 설치되고 관리운영조례를 제정 공포한 이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시사단 지방 유형문화재 제33호

   조선 정조 16년(1792)에 정조 임금이 평소에 흠모하던 퇴계선생의 학덕을 기리고 지방 선비들의

   사기를 높여주기 위하여 어명으로 특별 과거인 도산별과(陶山別科)를 보인 장소이다. 총 응시자가

   7,228명이었고 임금이 직접 11명을 선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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