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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순례(조선 왕릉 선릉의 성종 능)

노송☆ 2013. 8. 2. 09:58

@ 2013년 8월 1일 목요일 맑음

@ 선릉은 조선 9대 성종과 계비 정현왕후 윤씨의 능이다. 성종은 추존된 덕종과 소혜왕후의 아들로 태어난지 두 달 만에 부친을 여의었다. 세조의 뒤를 이은 예종이 즉위 1년만에 승하하자 정희왕후의 명으로 1469년 왕위에 오른 성종은 태조 이후 닦아온 모든체제와 기반을 완성기켜 조선 초기의 문화를 꽃피웠다.

 

 

△ 이런 마크가 있는 곳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이라는 증표죠

△ 매표소에서 좌측으로 들어와 만나는 홍살문 

△ 홍살문에서 본 정자각  좌측으로 성종 능이 살짝 보이네요

△ 정자각 동계

△ 수복방

△ 정자각 뒤 신로

혼령이 정자각에서 제수 음식을 드시고 뒤 문을 통하여 신로를 건너 능역으로 간다고 합니다. 

△▽ 조선왕릉 능역은 나무숲이 우거져 여름에도 산책 하기 좋은 곳이다.

 

△ 잉에서 내려다 본 정자각과 수봉방

△▽선릉의 모습

@ 선릉은 왕과 왕후의 능이 동원이강릉식으로 배치되었다. 세조의 유교에 따라 석실을 쓰지 않고 제반 상설은 {국조오례의} 양식4에 준하였다. 십이지상이 새겨진 병풍석 12면을 세우고 12칸의 난간석을 둘렀다. 그 밖으로 양석과 호석 2쌍과 무덤앞에 혼유석을 배치하고 양쪽에 망주석 1쌍을 세우고 3면의 곡장을 설치 하였다. 한 단 아래에는 문석인과 마석 1쌍, 가운데는 장명등석이 있으며, 그 아래 단에는 무석인과 마석 1쌍이 세워져 있다.

 

△무인석

△문석인

△▽ 성종이 잠들어있는 선릉은 유난히 많은 수난을 겪었습니다. 첫 수난은 임진왜란(1592-1598)이 한창이던 1593년에 일어났다. 왜군이 한양(서울)을 점령하면서 궁궐과 가까이 있던 선릉을 파헤치고 관을 꺼내 불태운 것이지요 이때 성종의 시신은 사라지고 말았다. 전쟁이 끝나고 성종의 시신을 찾으려 백방으로 노렸했지만 끝내 찾지못했다. 결국 선릉은 유해를 잃러버린 빈 무덤이 되었다. 이 후에도 큰 화재로 정자각과 능침이 불에 타는 사건이 두번이나 발생했다.

 

 

△병풍석에는 12지신상이 새겨져있다.

△ 호석 다른능의 호석과는 다르게 꼬리가 지면에 내려와 있다. 태평성대를 이룬 왕이라 마음이 편안해서 ?

 

△혼유석

△망주석

선릉은 동원이강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동원이강이란 둘 이상의 능이 같은 능호을 사용지만 , 가각 다른 언덕에 조성된 것을 말한다.

 

 △ 걷기좋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