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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여행==조선왕릉이야기 ==수릉(綏陵), 추존 문조와 신정왕후의 능

노송☆ 2013. 11. 5. 14:31

@ 2013년 10월 30일 수요일 맑음

@ 수릉(綏陵)은 추존 문조(익종)과 신정황후의 능 이다. 문조(文祖)(익종 翼宗) 1809-1830 는 23대 순조의 아들로 효명세자 시절 대리청정을 시작하여 인재를 널리 등용하고 백성을 위한 정치를 펴기 위해 노렸했으나 22세에 요절하였다.1834년(순조34) 아들 현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익종으로 추대되고 고종 때 문조로 추존 되었다.

신전왕후(1808-1890)는 풍은부원군 조만영의 딸로 1819년(순조19) 효명세자(문조)와 가례를 올리고 세자빈에 책봉되었다. 1834년 부군인 효명세자가 익종으로 추존되자 왕대비가 되었다. 1863년 철종이 후사 없이 승하하자 홍선대원군의 차남 고종을 왕위에 올린 후 수렴청정하였다. 83세까지 천수를 누리며 조선 후기 정국를 주도 했다.

 

△ 수릉가는길

 

△▽ 홍살문과 정자각

 

△ 수릉의 비각

 

△ 대한 문조익황제수릉 비문 글씨는 고종이 손수 전서체로 쓴 어필이다.

△동편에서 본 정자각

 

 

 

△ 능역에서 본 정자각

△ 정면에서 본 수릉

능 앞의 3단(초, 중, 하게) 중 중계 하계가 합해져 문석인과 무석인이 한단에 서 있다. 영조의 원릉부터 철종의 예릉까지 이처럼 3단이 2단으로 되어 있다.

△ 합장릉이지만 단릉처럼 봉분과 혼유석를 하나만 마련해 놓랐다. 왕릉의 상설물은 대부분 [국조장례보편]을 따르고 있다.

△ 1830년 5월6일 마지막 희망이었던 조선의 왕자 효명세자가 병으로 죽자 순조는 묘호를 연경(延慶)이라 하고 8월 4일 양주 천장산 의릉(경종) 왼쪽 언덕에 세자를 안장 했다. 이후 헌종이 즉위하자 아버지를 익종으로 추존해 연경묘는 수릉으로 바뀌며 왕릉이 된다.

헌종12년(1846년) 5월20일 풍수상 불길하다는 이우로 다시 양주 용마산 아래로 옮겨으며, 철종6년(1855)8월 26일 지금의 자리로 천장한 것이다. 건원릉 이래 마지막 9번째로 효명세자의 수릉이 몸으로써 동구릉(東九陵)이란 이름이 현재까지 남아 있다.

@신정왕후는(1808-1890)는 일찍 청상이 되었으나 헌종 대에 풍양 조씨 세도정치를 펼친 근원이 됐다. 헌종의 외척인 풍양조씨는 안동 김씨를 견제하려던 신정왕후의 뜻과는 달리 안동김씨와 쌍벽을 이루며 백성의 민원은 돌보지 않고 자신들의 권력 확장에만 힘써 결과적으로 혼탁한 정치를 가속시켰고 조선은 몰락의 길로 치달아 갔다.

△무석인

△▽ 못다 이룬 왕자의 한이 저 하늘가에 서려 있을까? 문무인석은 묵묵히 시립하고 있다.

△ 문석인

@ 문석인은 융건릉에서 처럼 길쭉한 얼굴에 광대뼈가 나오고 눈이 가늘며 얼굴이 어깨에 묻혀 답답해 보인다.

△ 문석인 뒤의 문양

△▽ 수릉의 망주석 세호가 다른 왕릉의 망주석 세호 보다 크다.

 

△ 난간 석주

△ 병풍석없이 난간석으로 봉분을 둘렀다.

△ 호석

△ 양석

△▽ 혼유석의 고석 문양

 

 

△ 수릉 뒤에서 본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