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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여행 == 평화누리길 연천구간 1코스 == 황포돗배 - 숭의전 구간-2

노송☆ 2012. 7. 16. 22:36

@ 2012년 7월 10일

 

 

 

 

@비룡대교앞에서 학곡리 방향으로 들어 선 임진각 뚝방길은 시맨트로 포장된 도로로 이어지다가 비포장으로 변한다. 비온 뒤라 걷기에 조금은 불편하지만 흙을 발고 걷는 촉감이 그 보상을 해준다. 포장된 도로를 걷다가 배수장을 지나면 도로는 비포장으로 이어지고 계속가다보면 길은 강변 아래로 이어진다.

 

 

@비룡대교앞 삼거리 공터에 있는 장승들 , 371번도로에서 학곡리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다. (위지도 A지점)

 

@비룡대교에서 학곡리로 들어가는 시멘트로 포장된 임진각 뚝방길(위지도 B지점)

 

@ 포장도로와 비포장 도로의 만남

 

@이 리본만 따라가면 평화누리길을 잘 안내 해 줍니다.

@뚝방길 아래로 내려서면 길은 좌우로 갈라지는데 좌측으로 간다. 자동차가 다니는 길이라 걷기에는 불편은 없다.

@ 평화누리길은 임진강 뚝방 아래 강변으로 이어집니다. (위지도 C 지점)

@ 강변 갈대밭으로 안내하는 이정표( 위지도 C지점)

@갈대밭길 모습, 갈대숲은 약1km정도 됩니다. (위지도 D 지점)

@ 갈대밭을 벋어나 다시 뚝방길로 올라 갑니다. ( 위지도 E 지점 )

 

@ 갈대밭에서 뚝방길로 올라와 600m 정도 가면 차도와 이어지고 학곡교를 건너게 된다. (위지도  F 번지점)

@학곡교를 건너 뒤 돌아 걸어온 길을 표시했습니다. ( 위지도 F 지점)

 

@ 강변 갈대밭을 지나 다시 뚝방길로 올라서 7-8백 미터 가면 차도를 만나고 학곡교에 이른다, 학곡교를 건너 고개마루를 올라서 내려서다 보면 오른쪽으로 다시 뚝방길로 가는 샛길을 볼 수 있다(위지도 6번지점). 이길로 내려서 뚝방길을 계속가면 풍차가 있는(위지도 7번 지점) 삼거리에서 직진하여 계속 뚝방길로 간다. 배수장앞을 지나 비포장도로를 계속가면 뚝방 길은 끝나고 펜션앞을(위지도 8번지점) 지나 마을길로 들어선다.(위지도 9번지점) 우회전 하여 600m 정도 가면 다시 차도와 만난다(위지도 10번 지점)

 

@학곡교를 건너 차도를 따라 고개를 넘어 내려가면 우측으로 시멘트로 포장된 새길이 나온다 이 길로 내려가 다시 임진강 뚝방길을 걷는다.(위지도 6번지점 )

 

 

임진강모습

@ 학곡교를 건너 차도를 따라 뚝방길로 내려오는 길(위지도 6번지점)

 

@ 풍차가 있는 삼거리에서 우측의 뚝방길로 간다.(위지도 7번지점)

@ 배수 펌푸장 앞 뚝방길,  이곳을 지나면 뚝방길은 비포장길이다.

 

@ 뚝방길에서 펜션앞을지나 마을로 들어서는 길(위지도 8번지점)

@ 삼거리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간다.(위지도 9번지점)

@ 차도길과 만나면 우측으로 차도를 따라 계속간다. ( 위지도 10번지점)

@ 차도와 만나면(위지도 10번지점) 우측으로 약간의 오르막 차도를 따라 오르다보면 우측으로 전망대라는 표지와 평화누리길 이정표가 있는 곳에 도착된다. (아래지도 11지점)

 

 

@ 전망대 표지와 평화누리길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위지도 11번지점) 우측으로 들어서면 길은 곧 산길로 들어선다, 여기서부터 숭의전 까지는 계속 산길로 숲이 울창하여 그동안 뚝방길과 차길을 걸은 맛과는 전혀 다른 맛으로 도보여행을 할 수 있다.

 

@ 차도를 벋어 나면 곧 평화누리길은 산속으로 이어진다. (위지도12번 지점)

@ 산길의 평화누리길 모습,  방금전 길 정리 작업을 했서요

 

@ 산봉우리를 올라 내려서면 길은 삼거리로 갈라지는데 좌측길을 버리고 안전망 줄이 쳐져 있는 우측으로 애려간다(위지도 위지도 14번지점)

전망대로 만들어 놓았지만 이제는 나무들이 커서 전망대 역활을 할 수 없다.

@ 산길을 내려서면 배수지 제방이다. 제방을 따라 가면 다시 산으로 올라가는 오솔길이 나오는데 이 길이 숭의전 가는길이다. 약 50m 정도 올라가면 숭의전이다.(위지도 16번지점)

 

@@ 숭의전 @@

@1397년(조선 태조6년)에 최초 건립된 숭의전(崇義殿)은 평양의 숭령전(崇靈殿;단군과 고구려 시조 동명성왕)과 숭인전(崇仁殿 기자), 경주의 숭덕전(崇德殿;신라시조), 충남 직산의 ·숭렬전(崇烈殿;백제 온조왕) 등과 함께 역대 왕조의 시조를 제사 지내던 곳으로, 고려 태조 및 현종, 문종, 원종 등 4왕과 평산 신씨 시조 장절공 신숭겸을 비롯하여 고려조에 큰 공헌을 한 16분의 신위(神位)를 모시고 있다.

전해 내려오는 말에 의하면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고려 왕조의 상징이었던 종묘사직을 없애기 위해 송도의 종묘에 봉안되어 있던 고려왕들의 위패를 배에 실어 강물에 띄워 보냈는데, 배는 물 흐름과 반대로 임진강 상류 방향으로 역류하며 스스로 삭녕지역까지 올라가다 다시 방향을 바꾸어 지금의 동이리 썩은소에서 하루를 정박한 후에 3km 아래에 있는 앙암사(仰巖寺) 석벽(잠두봉) 아래로 떠 내려와 머무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에 왕씨 자손이 남몰래 위패를 거두어 이곳에 묘를 짓고 이를 봉하였다고 전한다.

당시 이곳에 있던 앙암사는 고려 태조 왕건이 궁예의 신하로 있을 때, 철원과 개성의 중간지점이며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이곳에 자주 머물며 기도하던 왕건의 원찰(願刹)로 고려 왕들의 위패를 실은 배가 앙암사(仰巖寺) 아래 머무르게 된 것 또한 우연이 아닌 신묘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날 밤 심한 폭우와 함께 천둥 번개가 앙암사를 때려 절은 형체를 알수 없게 파괴되어 순식간에 폐허로 변해 버렸다 한다. 당시 마전 군수는 이러한 여러 사실을 조정에 보고하여 그 이듬해인 조선 태조6년(1397)에 고려 태조 왕건의 원찰이었던 앙암사(仰巖寺)가 있는 이곳에 고려 태조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을 건립하게하고 고려의 귀의군(歸義君) 왕우(王瑀)에게 제사를 지내게 했으며, 그 아들 상장군 왕조(王祚)에게 귀의군을 습봉(襲封)하여 왕씨의 제사를 받들게 했다. 또한 그 도의 관찰사로 하여금 가까운 고을의 장정을 징발하여 태조신성왕묘(太祖神聖王廟)를 짓게 했다.

또한 앙암사가 벼락에 파괴될 당시 경내에 있던 큰 범종이 임진강으로 굴러 물속에 잠겼는데 그 후 이못에서 국난(國難)이 일어나기 전에는 종소리가 울려 퍼져 미리 예견했다고 하여 이 못을 종못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옛 문헌에 의하면 수면이 잔잔한 날 잠두봉 정상에서 임진강을 내려다보면 그때 강 속으로 잠긴 범종을 목격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 숭의전 모습

 

 

 

 

▲ 제례 때 사용는 향, 축, 폐 등을 보관하고 제관들이 제례준비를 하며 머무는곳 

 

 @ 전사청 : 제례때 사용 할 제수를 준비하고 제기를 보관하는곳

 

 @ 고려 4왕의 위패를 모신 정전

 

@ 수의전의 청소 및 공사 시에 위패를 잠시 모셔두는 곳(위패를 옮겨 모실 때는 이안제와 환인제를 올려 고유례를 행함)